1.1 연구목적
1.2 락에 대하여
2. 한국 락의 역사
2.1 1960~70년대의 한국 락
2.2 1980년대의 한국 락
2.3 1990년대 이후의 한국 락
3. 한국 락이 직면한 문제점
3.1 마니아 아닌 마니아
3.2 열악한 환경 요건
3.3 전문적인 분야라는 잘못된 편견
4. 방송 여건 상의 문제
4.1 대중들의 외면과 아이돌 위주의 방향성
4.2 쇼 프로, 오락 중심의 방송
5. 결론
5.1 요약
5.2 반성 및 개선 방안
90년대에는 헤비메틀의 2세대들이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밴드가 스트레인져, 디오너서스, 아마게돈, 더 클럽, 제로지 등이다. 그리고 이들 밴드의 대표주자들인 서안상,이시영,안회태 등이 만든 미스테리와 몽키헤드까지가 헤비메틀 2세대로 보면 좋을 듯 싶다. 그렇지만 이들의 활동은 80년대 중반 1세대들의 모습에 비해 그다지 좋은 활동을 보이지는 못했다. 이미 서구의 팝도 헤비메틀의 시대가 저물고 있었음에도 LA메틀 중심의 활동을 했고 디젤,터보,나티,아발란쉬 등 스래쉬 메틀을 구사하는 밴드들도 메탈리카에 필적할 만한 사운드를 생산하고 있었음에도 대중의 이해부족으로 답보상태에 머물러야만 했다. 어찌되었든 이 당시 실력파로 활동하던 서안상,안회태,이시영,김병삼,배재범,임덕규,김동규 등이 현재 회자되는 인물들이 아닌것을 보면 90년대 초반 한국 록의 모습은 매우 상황이 좋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비록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여전히 7-80년대 뮤지션들이 추앙받고 있는 현실을 볼 때 말이다.
그러나 92년말에 발매된 이현석의 음반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현석 1집은 국내에서는 보기드문 기타연주 음반이다. 특히 잉베이 맘스틴의 주도아래 범주화된 바로크 메틀을 구사한 국내 최초의 음반이기도 하다. 이 당시 기타리스트들의 실력을 가름하는 잣대는 다름아닌 스피드였다. 얼마나 빨리 기타를 연주할 수 있느냐가 바로 기타리스트의 실력이 되곤 했던 것이다. 이현석은 1집에서 속주기타연주의 전형을 보여준다.
H2O 2집은 사실상 헤비메틀 시대가 끝나고 모던록의 시대를 알리는 최초의 완성도 높은 음반이었다. 김준원을 중심으로 한 하드록 밴드였던 H2O가 카리스마의 박현준, 김민기와 시나위 출신으로 베이스와 신디사이저에 모두 능한 강기영을 새로 영입하여 변신을 꾀하였다.
여러모로 볼 때 90년대는 80년대보다 이전 세대에 대한 정통성이 뒤떨어지는 시대임에 틀림없다. 80년대 그 뜨거웠던 헤비메틀의 주역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제도권으로 흡수되고(김종서,임재범,이근형,손무현,오태호 등) 이 땅의 록음악은 90년대식으로 새로이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성공한 케이스인 '넥스트'를 보더라도 그렇다. 물론 리더인 신해철은 80년대 후반 대학가요제를 통해 등장을 한 뮤지션이기는 하지만 그가 몸담았던 '무한궤도' 역시 정통성에는 거리가 멀었다.90년대 주류음악을 거론할때 서태지를 빼놓을 수는 없다.
서태지는 엔터네이너로서 90년대식 표본을 설정해 주었고 랩과 댄스에 대한 새로운 시류를 개척하기도 했다. 사실상 90년대 주류 음악의 처음과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서태지의 영향력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록을 이야기할 때 랩과 댄스의 귀재인 그가 거론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그는 랩퍼이기전에 록커였기 때문이다. 시나위 4집에서 베이스를 담당하면서 서태지의 프로 음악세계는 시작되었다. 무슨 이유에서 그가 솔로 음반을 준비하면서 비박스와 랩을 첨가하며 백댄서를 거느린 댄싱음악을 하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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