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혁명의 구조를 통해 살펴본 `사회과학 진보`의 허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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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과학 혁명의 구조를 통해 살펴본 `사회과학 진보`의 허구성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Intro

Ⅱ. 과학 혁명을 통한 진보

Ⅲ. ‘사회과학의 진보’의 허구성

1. 경제사회의 패러다임 이동

2. 허구성의 증명

Ⅳ. 사회과학 연구의 가치에 대한 항변

Ⅴ. 마치며
본문내용
Ⅱ. 과학 혁명을 통한 진보

차곡차곡 쌓여있는 모래성처럼 과학도 점진적으로 쌓여온 지식을 통해 발전한다는 무지의 소산에서 나온 믿음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에게는 진리였다. 물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출발하여, 뉴턴이 구조를 만들고, 아인슈타인이 그 위에 살을 붙여서 지금의 물리학 발전이 있었다는 순진한 생각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생각은 과학사를 조금만 이해하고 있다면 의심 받게 될 것이다. 즉 과학이론의 발전이 기존 이론의 첨가가 되기 위해선 물리학에 관한 아인슈타인 이론은 뉴턴 이론의 오류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 이론은 뉴턴이론의 오류를 증명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두 이론은 어떠한 측면에서도 양립 불가능 하다. 오히려 아인슈타인의 이론 성립을 위한 몇 가지 조건을 뉴턴 이론에 적용시키면 더 근사한 현실 측정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더욱 쉬운 예를 들자면, 당신은 감히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해석한 현실의 축척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해석한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차라리 저 둘의 관계를 비통약적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뉴턴의 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각각 그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이동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동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이동을 과학혁명을 통한 진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원후 2세기에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모두가 믿었다. 지금은 모두가 알다시피 결코 하늘이 돈다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원전 2세기의 과학자 공동체는 여러 가지 연구를 통하여 하늘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기본 명제를 세웠고 이를 기본으로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 방향을 결정하였다. 즉 기원후 2세기에 하늘이 돈다는 사실은 자연을 해석하는 기본적인 해석의 틀이었고, 우리는 이를 패러다임이라 부른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동 시대의 과학자들에게 연구의 방향을 결정해 주었다. 지구를 중심으로 하늘이 돈다는 기본 명제 하에 이미 짜여져 있는 퍼즐을 과학자들은 하나씩 맞추어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우리는 ‘정상과학’이라고 부른다. 뉴턴의 이론도 아인슈타인의 이론도 한 시대의 패러다임으로써 그 시대의 물리학을 해석하는 틀을 제공했으며, 그 틀 안에서 과학자들에게 ‘정상과학’의 임무를 제공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너무나도 많다. 즉 ‘정상과학’ 연구라는 퍼즐 맞추기 도중 패러다임이라는 해석의 틀로써 설명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변칙성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기존의 패러다임이라는 해석의 틀이 있음으로써 생겨난, 패러다임으로부터 유도되지 않은 현상을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