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신화 방송과 인터넷 그리고 대중, 그들의 관계에 대하여
- Agenda, 방송의 힘?
우상의 몰락, 새로운 대중의 등장
생명윤리, 우리가 고민한 적 없는 문제
방송, 스스로를 베는 칼날
또 다른 대중의 등장
방송과 인터넷, 그리고 대중 - 그들의 빛과 어둠
당시 난자매매 보도에 대한 대중의 지배적 담론은 ‘서구의 윤리의식일 뿐, 연구를 위해 자발적으로 난자를 기증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 이었다. 황우석의 거짓 발언, 돈의 댓가로 난자를 기증받은 적 없고 연구원의 난자기증은 없었다는 발언이 거짓으로 밝혀졌다는 점을 PD수첩이 밝혔음에도 아무도 그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방송에서 제시한 명제를 수용하지 않고 전면 거부한 것이다.
더군다나 ‘서양의 윤리일 뿐이다.’ 라는 입장은 애초에 생명윤리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논리가 아니라 황우석을 보호하기위해 형성된 논리였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대중은 현명하지 못했다. 연구를 목적으로 사람의 신체 일부분을 매매하는 행위와 연구자와 관계된 이들이 연구의 대상이 되선 안됨을 명시했던 ‘헬싱키 선언’은 민족성의 차이로 치부하여 넘길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의 경우엔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이 살인과 같다며 금지했을 정도로 민감한 문제를 우리는 황우석 한 사람을 위해서 순식간에 결론 내려버린 것이다.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과정은 난자에 체세포를 결합하여 수정시킨 후 어느 정도 배양하다가 그것을 파괴하여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무한증식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난자에 체세포가 결합된 이후, 그대로 배양을 한다면 그때 수정된 난자는 태아가 된다. 즉, 복제인간이 탄생한다. 결국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과정은 태아를 살인하는 것과 같을 수 있다. 우리는 과연 그것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있었던가?
2차세계대전 중 독일에서 자행되었던 생체실험, 유태인 여성을 강간하여 임신을 하게하고 배를 갈라 태아의 모습을 살피던 연구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다. 그 실험의 결과로 축적된 의학적 지식이 수많은 산모와 아이를 살려냈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폭력이 정당화 될 수 있을까?
당시 대중들은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생명윤리관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미디어가 황우석에게 부여했던 우상성에 입각해 결정한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습득한 정보들로 대중들은 활동적이면서도 지적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그 판단력은 여러 가지 외부효과로 인해 쉽게 흐려지고 만다. 이번 사건은 그 폐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방송, 스스로를 베는 칼날
당시 여론의 폭주에도 불구하고 MBC를 제외한 타방송국에서는 황우석의 난자매매에 대한 보도는 찾아 보기 힘들었다. 사실보도 여부를 떠나 애초에 불똥이 튈 것을 염려해 이슈를 피해버린 것이다. 이러한 소극적인 방송국의 보도태도는 전에도, 후에도 없었다. 당 사회의 중요한 이슈를 대중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언론이 스스로 검열을 해버렸다. 당시 대중들은 황우석에 대한 비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고 방송사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버린 것이다.
황우석 사건과 관련한 보도는 오히려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데 그것은 바로 PD수첩의 ‘강압취재’ 였고 그 보도야말로 대중들이 원하던 보도였기 때문에 反PD수첩 여론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게 된다. 생명윤리, 연구윤리, 진위논란 문제 등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단 하나의 의견으로 통일되어버린 파시즘적 여론, 대중에 의해 선동된 방송매체와 다시 그것에 재선동된 대중, 사실 그 시작은 황우석에게 우상을 탈을 씌운 미디어에 있었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