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골의 시대’의 배경
2. 고골의 생애
3. 고골의 주요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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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러시아 낭만주의
※ 환상문학이란?
5. 고골 문학의 3대 특징
출처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은 1809년 5월 1일, 남러시아 우크라이나 지방의 폴타바 주 미르고로드 군의 벨리키 소로친쯔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당시 우크라이나 지방은 지금과는 달리 소러시아라 불리고 있었습니다. 19세기에는 현재의 러시아 지역은 대러시아, 우크라이나 지역은 소러시아라는 명칭으로 통용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골은 엄밀한 의미에서 러시아인이 아니고 소러시아인, 다시 말해 우크라이나인 입니다. 아버지인 바실리이 고골은 우크라이나 혈통의 귀족이자 소지주였고, 어머니 마리야도 귀족계층 출신이었습니다. 어머니인 마리야는 열네살의 어린나이로 바실리이에게 시집와서 열여덟살 되던 해에 니콜라이 고골을 낳았습니다. 고골은 부모의 소유지인 바실리예프카에서 문학과 연극에 관심이 많은 가정 분위기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어머니인 마리야는 매우 감상적이며 신앙심이 돈독한 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늘 기도를 드리는 그녀의 신앙심은 단순한 신앙심과는 다른, 어딘가 미신적인 믿음의 성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가정생활 중에도 늘 입버릇처럼 어떤 미신적인 이야기, 예를 들어 나쁜 짓을 하여 죄를 범하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된다, 이 세상에서 처벌을 받지 않고 지나가더라도 결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심판을 받고 자신의 죄에 대한 응분의 받게 되리라 등등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생활과 연결된 많은 미신적인 습관들은 어린 고골에게 자연스럽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1821년 고골은 키예프 북부 네진 시의 김나지움에 입학하게 됩니다. 이 기숙학교에서 고골은 계몽사상과 데카브리스트 사상 등 진보적인 교육을 받았습니다. 고골은 학과공부 외에 여러 방면에 관심을 나타내며 과외활동을 했습니다. 이때부터 시와 희곡을 쓰기 시작했고, 바이올린과 미술공부도 했습니다.
미술 분야는 그 후에도 계속 취미를 가지고 있어서 그가 남긴 미술작품이 몇 점 전해지고 있습니다. 미술에 대한 식견은 후일 그의 단편작품 [초상화]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이 작품은 미술에 대한 고도의 전문적인 지식으로 가득 차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미술에 대한 상당한 정도의 지식을 갖추지 않으면 쓰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것을 전제할 때 고골의 미술에 대한 관심의 폭과 깊이가 어떠했는지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골이 적극적인 흥미와 관심을 갖고 관여했던 것은 문학과 연극분야였습니다.
그는 또한 시를 썼고, 드라마와 산문작품도 썼습니다.
1828년, 네진의 김나지움을 졸업한 고골은 화려하고 보람있는 미래의 인생길을 향해 첫발을 내딛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고골은 1828년 12월에 그는 엄청나게 큰 야망과 무지갯빛 미래가 자신을 기리고 있으리라는 확신과 함께 낭만적인 전원시 [간스 큐헬가르쩬]의 초고를 가지고 수도 뻬쩨르부르그를 향해 힘찬 상경의 길에 올랐습니다.
1829년 알로프(V.Alov)라는 필명으로 [간스 큐헬가르쩬]을 자비로 출판하였으나, 아무런 반응을 얻지 못하자 팔리지 않은 자신의 작품을 모두 사들여 소각해버립니다. 그러고는 1829년 7월에 그는 도망치듯 외국으로 달아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드높은 자존심과 원대한 포부가 깡그리 짓밟힌 뻬쩨르부르그를 영원히 떠나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다분히 우발성이 짙은 고골의 행동에서 그가 내면 깊숙이 쉽게 상처받고 심리적인 충격을 못 견뎌 하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고골의 최초의 외국행도 이처럼 미리 계획된 것이 아니라 충동적으로 느닷없이 이루어졌지만, 실제로 그는 그 후에도 러시아에서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거나 정신적인 좌절에 빠지면 마치 도망치듯 외국여행의 장도에 오른 적이 수 차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현실 도피적인 성향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남달리 감수성이 예민하고 자의식이 강하며 동시에 콤플렉스도 많은 그의 성격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1차 외국여행은 그리 길게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뻬쩨르부르그를 떠났을 때도 충동적으로 떠났던 것처럼 독일에 도착하자 그의 마음은 쉽게 바뀌어서, 자신의 운명을 시험해 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는 독일의 뤼벡, 함부르크까지만 갔다가 다시 러시아로 귀국했습니다. 뻬쩨르부르그로 돌아온 고골은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내무성의 말단직원 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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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본 러시아 (김형주 저)
러시아 지역연구 (임현수, 이길주, 한종만, 김우승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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