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들어가서
2-1. 아트재테크란?
2-2 예술과 자본의 관계 - 지난 시절과 현대의 모습
2-3 예술과 자본의 관계 - 통로의 문제?
2-4 예술과 자본의 관계 - 취향의 문제?
3. 나오며
(참고문헌)
예술이 예술자체로서의 순수한 가치를 가지기에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는 것은 수업시간에도 배웠듯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고대시절의 예술, 지금과는 그 단어가 가지는 개념자체가 약간 다르지만 그때부터 예술은 신에대한 숭배와 같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다시 나누어지고 기술의 범위를 넘어서고 나서야 예술 외적인 목적이 아닌 오직 ‘미’라는 예술의 유일한 목적을 위해서 존재하게 되었다. 이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예술은 예술가 개인의 자아실현을 도와주었고 그 순수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예술가의 자아실현을 위해서는 예술가의 경제적 토대가 있어야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예술과 자본은 미라는 순수한 예술의 목적달성에 있어서도 필수불가결한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현대에도 무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이름없는 수 많은 예술가들은 기본적인 창작활동을 하고 싶어도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기도 힘들어한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위대한 예술품인 고려청자와 같은 경우에도 그 계승자를 찾기가 힘든 실정이라고 한다. 또한 수많은 인간문화재들도 사람들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의 비기들을 전수받지 않으려한다. 결국 이렇게 예술은 자본과 연결되지 않고서는 계속해서 존재하기 힘들다.
이렇게까지 되면 문제점은 쉽게 하나로 좁혀진다. 돈이 되지 않는 예술이 무시되는 현상이다. 유명한 많은 예술가들이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돈벌이로 만들어낸 작품들을 말년에 후회하고 욕하는 이야기들이 내려온다. 예술가들도 돈을 위한 작품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점들은 예술가들 자체의 문제이다. 때로는 돈을 벌기위해 만들어낸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반대로 예술을 너무 자본과 관련해 평가하는 것이다. 아름다움 그 자체보다는 예술가의 명성, 새로운 기법 등으로 가격이 매겨지는 현실에서는 예술가 내면의 고통-돈과 순수한 목적으로의 예술추구와의 갈등-따위는 외면된다.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는 감상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감상이라는 것이 어느때부터인가 미적가치보다는 돈이되느냐 안되느냐와 같은 경제적 가치로 의해 내려지고 있다. 비단 꽤나 큰 잠재적인 경제적 시장인 미술계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술시장의 경우는 애초부터 작은 파이에서 시작했다. 곧 언급할 내용이지만 예술작품의 부흥기였던 르네상스때부터 예술작품은 일부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그 일부를 제외하고서는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아름다움, 정서적 안정등을 느끼기에는 나머지 계층은 먹고사는 일이 너무나 중요했다. 이렇게 일부만 향유하고 있는 미술시장 외에도 다른 장르의 예술에서도 작품자체를 평가하기보다는 경제적으로 판단하는 일은 일어나고 있다.
음악, 영화 등 현대예술에서 대중의 관심이 지대한 분야에서도 알게모르게 이러한 일들은 진행되고 있다. 음악적 가치는 점점 더 떨어져 가고 있으며, 음악을 듣는 통로(매체)도 그 양은 늘었을지 몰라도 그 질적 수준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영화의 경우도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은 늘었을지는 몰라도 그 수준은 점점 예술자체의 목적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매체로 인한 예술의 순수성 훼손은 다음 장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음악과 영화같은 경우는 감상하고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이 일부가 아니라 매우 많은 정도지만 이마저도 경제적 목적에 의해 변질되었다. 단지 클래식이 그 미적가치가 높기 때문에, 예술영화가 예술적 가치가 높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게 되어버렸다. 클래식이라면 무조건 ‘따
구별짓기. 삐에를 부르디외 저
삼성비자금 기사 관련. 한겨레2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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