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처용가(신라의 향가)의 원문과 해독
Ⅲ. 처용가(신라의 향가)의 문학적 표현 이해
Ⅳ. 처용가(신라의 향가)의 서정공간 이해
참고문헌
아내를 빼앗긴들 어떠하료 하던 처용이 노래는 유사 권 2 처용랑조에 실려 있다. 제 49대 헌강왕 때에 서울서 바다 어구까지 집들이 총총 들어선 가운데 초가가 한 채도 없으며 길에는 피리 소리,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고 비바람도 철을 따라 순조로웠다. 어느 때 대왕은 개운포(지금의 蔚州)에 놀이를 베풀었다가 돌아가는 길에 바닷가에서 잠시 쉬고 있었는데, 홀연히 구름과 안개가 일고, 천지가 캄캄하여 앞길조차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이것이 괴이하여 좌우에게 물어보니 일관이 여짜옵기를 "이것은 동해용의 조화이오니, 무슨 좋은 일을 행하여 이를 풀어야겠습니다."라고 한다. 그래서 소관 관리에게 칙령을 내려서 용을 위하여 그 근처에 한 절을 세우게 하였는데, 이 칙령이 내리자 구름과 안개가 다 개었다. 그래서 거기를 개운포(開雲浦)라 불렀다. 동해의 용은 기뻐서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어전에 나타나서 왕의 덕을 찬송하여 노래하고, 음악을 올리며 춤을 추고, 그 한 아들을 왕께 주었다. 함께 서울에 와서 정치를 보좌하게 하였다. 이 용의 아들이 처용이다. 왕은 처용을 오래 멈추어 두기 위해서 아리다운 아내를 주고, 또 급한 직을 주었다. 처용의 아내는 절세의 미인임으로 역신이 그를 흠모해서 사람의 모양으로 변신을 하고, 어떤 날 밤 그의 집에 이르러서 몰래 한께 자고 있었다. 처용은 바깥에 나갔다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둘이서 함께 자고 있는 지라 자기는 노래를 부르며, 춤추며, 물러나왔다. 이 때에 역신은 형체를 나타내고 처용의 앞에 꿇어앉아서 "제가 공의 부인을 흠모하여 지금 범했는데, 공이 보시고도 노여워 안 하시고 도리어 노래를 부르시니 이 후로는 공의 화상만 있는 곳이라도 결코 들어가지 않고, 피하리다." 하고 사죄하였다. 그로부터 나라 풍속에 처용의 화상을 문간에 붙여서 역신의 해를 피하곤 하였다.
Ⅱ. 처용가(신라의 향가)의 원문과 해독
處 容 歌
東 京 明 期 月 良
夜 入 伊 遊 行 如 可
入 良 沙 寢 矣 見 昆
脚 烏 伊 四 是 良 羅⇒ 역신의 침범
二 肹 隱 吾 下 於 叱 古
二 肹 隱 誰 支 下 焉 古
本 矣 吾 下 是 如 馬 於 隱
◈ 김유미, 처용전승의 전개양상과 의미 연구, 부산대학교 대학원, 1998
◈ 김학성, 처용설화의 서술구조와 처용가의 성격, 문학한글4호, 한글학회, 1990
◈ 윤영옥, 신라가요의 연구, 영남대 박사학위 논문
◈ 정병현, 처용가 연구 논문집 22, 한국 국어교육 연구회, 1982
◈ 최용수, 처용가에 대하여, 처용연구전집II, 도서출판 역락, 2005
◈ 최철, 향가의 문학적 해석,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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