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국가들의 독립과정과 한국의 독립과정 비교
300년 이상 식민 통치를 받아오던 중남미 식민지에서 독립을 위한 투쟁이 시작된 배경은 기본적으로 당시 식민지 사회의 갈등구조와 이를 심화시킨 외세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중남미 식민지에서 식민 통치가 장기화되면서 크리오요(식민지에서 태어난 에스파냐인)와 페닌술라레스(에스파냐본토인)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었다. 주로 경제 부분에서 활동하던 크리오요들은 그들의 수와 경제적 부가 확대되어 감에도 불구하고 여전이 정치적인 권력은 페닌술라레스들에게 독점당하고 있었다. 또한 스페인의 본토우선주의 와 중상주의 정책은 식민지 태상의 많은 크리오요들에게 불만을 품게 만들었다. 스페인은 식민지를 그 자체로서 발전시키려 하기 보다는 스페인 왕실의 개인 금고처럼 여겼고 본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식민지로 수입되는 외국의 물산에 대해 높은 관세정책을 유지했다. 게다가 식민지에서 생산되는 상품 중 본국의 상품과 경쟁이 될만한 것들은 생산을 중지시켰다. 그런 이유로 스페인은 1595년부터 중남미의 포도재배를 금지시키기도 했다. 스페인 본국의 포도주와의 경쟁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본국의 이런 태도는 어쨌든 라틴아메리카에서 살아야하는 크리오요들에게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따라서 크리오요와 식민 모국 에스파냐의 근본적인 갈등 요인은 정치적인 것 보다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크리오요들은 독립전쟁이 전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때까지 식민 모국의 왕권에 대해서는 크게 저항감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들의 불만은 중남미 식민지에서 생성된 부가 쇠퇴하는 식민 모국의 왕실로 계속 유입되는 것과 페닌술라레스의 경제적 특권 유지라는 점에 있었다. 특히 독립전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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