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헤드윅과 천하장사 마돈나를 통해 본 성차
이 수업을 들으면 인문교육을 받는 자로서의 행복을 느꼈다. 스스로를 돌아 볼 기회를 아니, 스스로를 깨닫고 나를 돌아보며 느낀 것으로 사회를 보는 시각도 새롭게 성숙해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인문학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찾는 일, 세상의 눈에 비친 내가 아닌 내 눈 속에 나를 찾는 일-
성적 소수자, 그들의 삶은 타인의 삶에 그치지 않고 곧, 나의 삶이 된다』
‘헤드윅’과 ‘천하장사 마돈나’.. 이 영화들을 본 것은 꽤나 된 일이다. 특히 '헤드윅'이 그렇다. 아주 늦은 새벽, 그대로 두면 아침이 될 시간. 답답한 마음에 인디영화들을 검색하다가 '헤드윅' 이라는 영화를 클릭 했다. 평론가들 만장일치로 훌륭하다는 칭찬일색이다. 그 순간, 만화방을 겸업하는 집 앞 DVD 가게로 향했다. 전에 영화를 만드는 친구가 ‘헤드윅’과 ‘록키 호러 픽처 쇼’를 추천해줬던 기억이 더듬어졌다. 진한 삶의 이야기 하나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결정했지만, 타이틀을 읽어보니 rock 뮤지컬 이란다. 혼자 맞을 아침의 우울함을 극복하고자 음악이나 들어볼까 해서 봤는데, 내 나이 22임에도 보기 불편해지는 영상들이 ‘rock’을 타고 내게 다가왔다. 불편함을 이기고 플레이 버튼을 꾹 눌러두었고, 영화가 정지 되었을 땐, 새벽의 쓸쓸함이 삶에 대한 치열한 고군분투의 강요와 함께 나태한 내 삶의 가슴에 묵직한 돌 하나를 얹어 놓는다. '헤드윅'.. 그렇게 '헤드윅'은 내 기억 속에 동성애 트랜스젠더의 음악인생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인생을 마주한 한 남자? 여자? 아니 '헤드윅', 그 고유명사로 기억 된다. 그리고 군대에 다녀와 본 '천하장사 마돈나'는 '제 2차 헤드윅'으로 기억된다. 정말 이 영화들은 주인공이 트랜스젠더일 뿐, 모두 삶에 대한 진지한 자문자답으로 가득 차 있다. '천하장사 마돈나'가 좋았던 것은 어두운 추억으로 기억 속에 퇴색되어 가던 ‘헤드윅과 함께한 나의 새벽’을 너무나도 밝은 리듬으로 일깨워줬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 그에 대한 감상을 적어놓는 것은 오래된 나의 습관이지만, 잊었던 기억 속의 다 채워지지 않은 '헤드윅'의 페이지를, 아주 얕은 고찰에 머물러서 한참이 남았던 빈 공간을 ‘천하장사 마돈나’가 마저 채워줬다. 마저 다 채워진 '헤드윅'을 통해 보게 된 성 소수자들의 삶에 대한 나의 고찰, 그 지난 날 새벽의 랩소디의 다음 장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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