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한미유엔군의 북진공격(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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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남북분단과한국전쟁] 한미유엔군의 북진공격(39)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미국의 참전과 북진

2. 한미군의 북한 점령

본문내용

4장 인천상륙작전과 점령정책

1. 미국의 참전과 북진
서울에서 6월25일 오전10시에 타전한 주한대사의 전보는 공격이 남한에 대한 전면적인 공세인 것으로 보인다고 하고 이를 접수한 미국은 문제를 유엔 안보이사회로 가져간다. 27일 정오에 발표된 미 대통령 성명은 안보이사회 결정에 따라 미국 정부는 해공군의 출동을 명령하고. 6월29일 저녁의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는 맥아더에게 38도선 이북에 대한 공군작전의 확대와 지상군 투입을 명령하였다. 7월1일 24사단이 출동하여 미국은 개전 5일째에 전면적으로 한국전쟁에 개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7월20일 대전 함락 이틀 뒤 1기병사단이 남한에 도착하여 미군은 총3만9천명으로 늘어났지만 북한군을 저지할 수 없었다.
8월 초 한미군은 낙동강 동쪽으로 후퇴하여 최종적인 방어선을 구축하고 1개월 이상 견뎌냈다. 이 동안 큐슈에서 날아오른 미군기가 작전을 전개하여 8월4일부터 37도선 북쪽의 주요 철교와 일반 교량을 파괴하였다. 8월7일에는 평양의 병기고와 정차장이 파괴되고 원산의 조선석유정제공장이 파괴되었다. 흥남의 화학공업지대에도 폭탄이 투하되었다. 8월의 폭격은 전쟁의 귀추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공중폭격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북한은 보급 자체가 부서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