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27)
1. 다시 중국의 참전에 대하여
2. 중․미 전쟁의 체제와 전개
3. 정전회담의 개시
1. 다시 중국의 참전에 관하여
미국의 유엔 설득과 이에 따른 유엔의 결의로 한국 전쟁에 유엔군의 참여가 사실화되자 전세는 크게 역전되었다.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하자 북한의 고민은 더해졌다. 미국이 참여하지 않을 것을 알고 시작한 전쟁이었기에 그 당혹감은 더 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에 김일성은 같은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과 중국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결정하여 스탈린에게 원군 요청을 하였다. 중국과 소련이 참전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였지만 중국은 참전하기로 결정내렸다. 당시 중국의 정세는 타이완의 침공작전 문제와 북한의 원군요청으로 다소 혼란한 상황이었는데 타이완 문제에 대해선 역량부족을 이유로 연기 결정을 하였으나 북한의 원군 요청은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판단, 출병을 결정한 것이다. 여기에는 마오쩌둥의 역할이 컸는데, 그는 참전을 통한 이익이 크며, 지금의 한국전쟁이 아시아의 공산화 움직임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여 ‘원자폭탄이 떨어지더라도 참전할 수 있다’ 는 강한 결의를 밝혔다.
한편, 김일성이 스탈린에 원군 요청을 하였을 때 그는 직접적인 소련의 출병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중국에 압력을 넣어주길 바랐던 것 같다. 소련의 입장은, 미국과 또 다시 충돌하게 될 경우 다시 세계 대전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신중론이 그 힘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소련은 중국의 참전 결의에 감명을 받아 장비 제공 등의 약속을 한 것에서 더 나아가 공군지원에까지 이른다. 비록 소련의 공군 지원이 기체에 북한의 마크를 달고 비행사는 중국 공군의 옷을 입는 등 이면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소련이 한국전쟁에 대해 내린 판단이 다소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찌되었든, 소련은 끝까지 공식적인 참전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는 당시의 세계체제가 얼마나 엄혹했고 위기촉발의 상황이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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