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보고서] 홋카이도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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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답사보고서] 홋카이도 답사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홋카이도(北海島)는 일본 북쪽 끝에 있는 홋카이도 본도(本島)와 주변 섬으로 이루어진 지방을 말하며 일본열도의 최북단에 해당한다. 지형은 이시카리(石狩)와 토마코마이(苦小牧)를 잇는 石狩低地帶를 경계로 동부의 동체부와 남서쪽의 반도부로 나뉜다. 동체부 중앙에는 아사히다케(旭岳)를 중심으로 한 대설산국립공원과 이를 중심으로 기타미 산맥․히다카 산맥이 이어져 동서를 가로고 있다. 동부에는 아칸 국립공원을 포함한 치시마 화산군이, 서부에는 데시오와 유바리(夕張) 산지가 나란히 뻗어나 요로․후라노(富良野) 등의 중간분지열을 형성하고 있다. 혼슈 북부와 맞닿아 있는 반도부에는 에조후지(蝦夷富士)라 불리우는 요우테이잔(羊蹄山)과 도야코(洞爺湖)국립공원의 화산군이 위치한다.
홋카이도(北海島)는 1869년에 일본에 의해 부여된 이름이다. 원래는 아이누라고 하는 원주민이 살고 있던 미개지로 에조치(蝦夷地)라고 불렀으며, 일본의 메이지유신 이후에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다. 현재 아이누인들은 홋카이도의 일부에만 살고 있으나, 본래의 활동영역은 사할린 남부와 쿠릴열도 등으로 ‘아이누모시리’(그들 말로 인간의 땅을 의미한다)라는 광대한 지역을 포함하였다.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일본은 류큐, 타이완, 조선 등에 대한 침략을 거의 동시에 진행했는데 이러한 일본의 대 아시아 침략사 중에서 아이누모시리는 최초로 그들의 식민지가 되었다. 즉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침략전쟁을 일으킨 사이에 식민지 아이누모시리의 자원을 빼앗기 위해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수많은 탄광과 광산 개발을 위해 홋카이도 개척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일본이 영토확장에 나서기 전까지, 아이누들은 수렵, 어로, 채집을 생업으로 하면서 쿠마오쿠리(熊送), 문신 등 그들만의 독특한 풍습과 역사를 바탕으로 15~18세기에는 그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홋카이도를 중심으로 하여 동쪽으로 캄차카 반도 남부, 북쪽으로 사할린 섬 남부, 남쪽으로 일본 본토에 접하여 널리 분포하고, 사할린 북쪽이나 흑룡강 유역, 캄차카반도까지 교역을 넓히고 있었다. 그러나 메이지유신을 거치며 근대화를 위해 식민지 개척에 온힘을 쏟은 일본정부의 ‘개척’활동으로 아이누모시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일본정부는 1869년 삿포로에 開拓使를 설치하고 8월에는 홋카이도라 명칭을 개칭하였다. 또한 일본 정부는 미국인 건축가 등을 초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