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비스마르크 체제
3. 유럽균형의 붕괴
4. 승전국의 질서.
1. 통일 독일과 이탈리아
1862년 의회와 대립하던 프로이센의 국왕 빌헬름 1세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Eduard Leopold von Bismarck)를 수상으로 임명하게 된다. 비스마르크는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증강하였다.
여기서 잠깐 유럽의 정세를 살펴보자. 전통적으로 적대관계였던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그리고 프랑스를 경계하면서 고립주의를 유지하고 있었던 영국. 유럽은 이렇게 세 개의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균형이 유지되고 있었다. 러시아의 경우 오스만제국이 쇠락함에 따라 오스만제국의 영토인 발칸반도를 통해 지중해로 진출하고자 하였지만 프랑스와 영국의 견제로 번번히 실패하였다. 독일은 수많은 소국으로 나뉘어 오스트리아의 영향력 아래 있었고 이탈리아는 통일 이후 국력을 키우고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의 증강된 군사력을 이용, 1863년 러시아를 도와 폴란드의 폭동을 진압하여 러시아로부터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1864년 프로이센은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문제로 오스트리아와 대립을 하게 되었는데 이는 비스마르크가 의도한 일로 비밀리에 프랑스, 이탈리아와 비밀협약을 한 뒤 1866년 오스트리아와 전쟁에서 승리하여 독일에서 오스트리아의 간섭을 끊어냈다. 조나단 로즈, 1993, 인물로 읽는 세계사-비스마르크. 현대출판사 p.88
오스트리아의 간섭을 떨쳐낸 프로이센은 마인강 이북의 독일영토를 통일하게 되었으며 프랑스와의 결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통일 독일이라는 강대국이 나타나는 것을 원치 않았던 프랑스는 나날이 커져가는 프로이센을 견제하고자 하였고 1870년 프랑스는 에스파냐 왕위계승문제를 빌미로 프로이센에 선전포고를 하였으나 패배를 거듭하여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3세가 포로로 잡히고 파리가 포위되어 두 달 만에 항복하게 되었다. 1871년 1월 프로이센은 마침내 독일을 통일하게 된다.
조나단 로즈, 1993, 인물로 읽는 세계사-비스마르크. 현대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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