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프러시아 수상 취임 전후
Ⅲ. 비스마르크의 외교 정책 - 독일 통일 이전
1. 슐레스비히-홀슈타인문제
2. 프러시아-오스트리아 전쟁
2.1. 프랑스-이탈리아와의 협상과 오스트리아의 고립
2.2. 비엔나 진격 중지
3.프러시아-프랑스전쟁
3.1 엠스 전보 사건
3.2. 보불전쟁에서의 독일 민족주의
VI. 비스마르크 외교정책- 독일 통일 이후
1.개관
2. 1873년 3제 협상
3. 양국 동맹과 3제 협상
4. 3국 동맹
5. 비스마르크 체제의 절정기, 그리고 유럽 세계의 변화
6. 비스마르크 동맹 체제의 재정비
7. 비스마르크 동맹 체제의 붕괴
Ⅴ. 결론 - 비스마르크는 현실주의자인가, 이상주의자인가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의 집안은 알트마르크(Altmark)의 오래된 귀족가문으로, 비스마르크의 아버지는 시골에 묻혀 있기는 했으나 프러시아의 지주귀족인 융커였고, 어머니는 고급관료의 딸이었다. 그의 당당한 체구와 왕성한 식욕 등은 그 당시 전형적인 융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든든한 출신기반을 고려해보면 자연스럽게 그가 변혁이나 미래에 대한 이상적인 지향보다는 안정을 중시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는 17세에 괴팅겐의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학교를 졸업한 후 비스마르크는 자신의 꿈인 외교관에 관련된 일들을 하다가 싫증을 내면서 몇 년 동안 농장 경영주로 살았는데, 이 시절에 광범위한 학업을 통해 이론적으로 자신을 무장했다.
이후 농장 경영주에서 벗어나 다시 일선에 복귀한 비스마르크는 수상이 되기 전까지 의회의원이 되어 정치에 뛰어들었다. 비스마르크는 의회 활동을 하면서 절대주의와 반동의 선동적 대변자로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으며, 온건한 자유주의적 조치에 반대했다. 자신이 귀족 계급임을 인정하며, 왕과 귀족 중심의 정치가 아닌 입헌제도를 강하게 비판하였던 비스마르크의 정치 경력이 의회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인 상황이다.
비스마르크가 수상이 된 시기는 국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나 가장 어려운 상황이었다. 헌법문제에 있어 국왕과 의회와의 심각한 대립을 해결해 줄 인물로 수상에 임명된 비스마르크는 곧바로 독일 연방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