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업적 인정의 필요성
3. 업적 인정 사례
1) 서론
2) 선덕여왕 - 업적인정 성공 사례
3) 선조 - 업적인정 실패 사례
4. 결론
5. 출처
ㄱ.김춘추(태종무열왕 [太宗武烈王, 604~661])
신라 제29대 왕으로 김유신 등에게 5만의 군사를
주고 당나라 군사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당의 율령제도를 모방한 관료체계를 정비하고 구
서당이라는 9개 군단(軍團)을 설치하는 등 왕권을
확립하였다.
ㄴ.김유신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의 장군. 소정방이 이끈 당
나라 군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당나라 군
과 함께 고구려 정벌에 나서 여러 번 실패했으나 결
국 성공하였다. 이후, 당나라 군사를 축출하는 데
힘써 한강 이북의 고구려 땅을 수복해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져 놓았다.
ㄷ.선덕여왕의 업적 인정 “관인명민(寬仁明敏)”
신라사를 통해 가장 훌륭한 인재들로 꼽을 수 있는 김춘추(602~661)와 김유신(595~673)이 정치군사적 실력자로 입지를 확보해 간 시기가 바로 이 선덕여왕대이다. 김춘추는 폐위된 진지왕(재위 576~579)의 손자였지만 지혜와 화술, 국제 감각까지 갖추어서 당은 물론 일본에도 알려졌다. 그런데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남성이나 위약한 남성이 왕위에 있었더라면, 이 잠재적인 왕위 위협자를 그냥 놓아두었을 리 없다. 가야계라는 한계를 가진 김유신도 배제나 견제를 받아 어중간한 인물에 머무르거나 앙앙불락(怏怏不樂)하는 골치 아픈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자애로운 성 왕의 리더십은 그들을 견제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가까이 받아들임으로써, 문무 양면에서 동아시아의 뛰어난 영웅들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후에 선덕여왕이 여성 왕으로서 권위와 리더십에 한계를 가진 중에도 국정을 원만하게 운영할 수 있었던 데는, 김춘추와 김유신의 역할이 컸다.
[출처-역사속의리더십 부교재 ]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인물소개부분)]
[NAVER BLOG - 이순신]
[사진- MBC 선덕여왕 KBS1-불멸의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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