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헌의 심정은 어땠을까?)
2. 고려 8시 뉴스 특보
(고려시대에 8시 뉴스가 있었다면?)
3. 독점! 최씨형제 최측근과의 일문일답(당시 인물과의 가상 인터뷰)
1197년 10월 X일
아우인 최충수가 드디어 일을 저질렀다. 창화백 왕우의 딸이었던 태자비가 궁궐에서 울면서 내쫓겼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야 말았다. 곧장 그 길로 아우를 찾아갔다. 아우는 새로운 결혼 준비로 한창 바쁜 모습을 보였다. 내가 모습을 비추자 얼굴에 난색을 표하더니 곧 안으로 안내를 하고 함께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며 물었다.
‘자네가 딸을 동궁에 바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사실인가?’ 그러자 아우가 ‘사실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아무런 거리낌없이 대답하는 아우를 보자 답답함이 일어, 이의방이 딸을 태자비로 삼고 나서 결국 남의 손에 죽은 예까지 들어가며 아우를 설득해 보았다. 무리하게 왕실에 딸을 납비하는 것은 정권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아우를 어르고 달래자 “형님 말씀을 듣지 않을 수 없지요” 라고 태도를 바꾸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아우의 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진정 아우를 걱정하는 마음에 이 결혼을 말리는 것인가?’
대답은 아니다. 아우가 형인 나 최충헌을 제치고 정치적으로 우위에 서는 것이 매우 두렵다. 이것은 용납 할 수 없는 일이다.
1197년 10월
뜻을 바꾸는 듯한 아우의 태도에 한시름 놓고 있 었으나 그게 아니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장부는 자기 할 일을 자기가 결단해야 한다”며 결혼 준비를 다시 서둘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동안 말없이 지켜만 보시던 어머니가 직접 아우를 찾아가 설득을 하였다. 하지만 아우는 “부인네들이 나설 일이 아니다” 며 친어머니를 떠밀어 땅에 내동댕이 쳐버렸다. 아우가 제정신이 아닌가보다.
아우 최충수가 개인적으로 형인 나 최충헌을 제치고 정치적으로 우위에 서고 싶다는 욕심과 아우를 추종하는 세력들의 부추김도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데 한 몫 하였을 것이다.
1197년
혼인 당일 군사를 동원하여 광화문을 막고 혼인행렬을 대궐 안으로 들여보내지 말아야 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아우가 매우 화가 나 형인 나 최충헌의 손과 발을 모두 잘라버리겠다는 망언까지 내뱉었다고 한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아우는 오로지 권력만을 위해서 ‘효’ 뿐만 아니라 ‘충’도 버렸다.
권력 앞에 노예가 되어버린 아우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이렇게 비극적인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터뷰 2-유씨 부인과의 인터뷰
Q. 최충수 장군이 어머니인 부인을 직접 마당으로 떠밀었다고 하는데 정말인가요?
A. “......” (말이 없고 고개를 끄덕임)
Q. 두 형제는 어려서부터 사이가 안 좋았나요?
A. "아니요...결코 그렇지 않았어요...두 사람은 어렸을 적 부터 사이가 좋아 항상 같이 일 꾸미기를 좋아했고, 함께 늦게까지 돌아다니곤 해 원호(최충헌,최충수의 아버지) 당신께 같이 혼나곤 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다)
Q. 그래선 안되겠지만 만약 두 형제 중 한 사람이라도 무사하지 않게 된다면 살아남은 자식이 누구든지 모자간의 인연을 끊으시겠습니까?
A. “충수는 성격이 강직하고 곧으나 귀가 얇고 인정이 많아서 옆 사람의 충동을 받으면 쉽게 넘어가는 성격입니다. 지금은 비록 간신배들의 말을 듣고 있으나 만약 간신배들을 모두 제거한다면 반드시 형의 말을 들을 것입니다. 그래서 충헌에게 신신 당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둘 중 하나라도 온전케 되지 않는다면... 저는 앞으로도 살아남은 자식 놈의 얼굴을 죽을 때 까지 보지 않을 작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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