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의 가치(숭례문 역사 및 가치)
혼을 잃은 대한민국(숭례문 화재)
혼과 대한민국(숭례문 일화)
2新 혼, 新 숭례문
혼의 재발견(숭례문과 문화의 필연적 의의)
꿈틀대는 혼(숭례문에서 화해와 통합 2012)
3숭례문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태조 5년(1396)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에 완성
종루(鐘樓)로서의 기능
조선 시대 기우제와 기청제를 지냄
주요한 국가 행사가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
숭례문 석축
도성으로의 출입을 통제하는 기능
왜적의 침략에 대비
1907년 - 좌우 성벽 일부가 헐리기 시작
숭례문의 원형이 파괴되는 결정적 사건
일제 강점기 때 물산공진회 장소로 사용
1930년대 중반부터 홍예 내부로의 출입을 금지
한국전쟁 - 숭례문 석축 전면과 문루 피해
1952년 - 긴급 보수가 진행
1961~1963년 - 석축 일부와 문루 전체에 대한 해체수리가 진행
2006년 3월 - 일반인에게 개방
2008년 2월 10일 -숭례문은 방화 피해
600년을 버텨 온 관악산의 화기(火氣)에 결국 숭례문이 무릎을 꿇은 것인가?
숭례문은 관악산의 화기로부터 경복궁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짐
관악산은 예부터 불의 산(火山) 또는 화형산(火形山)으로 불렸음
멀리서 보면 마치 톱날을 거꾸로 세워놓은 듯한 모양이 불꽃이 타오르는 형상
경복궁 정문 광화문 양 옆에 해태상을 세운 것도 관악산의 불기운을 제압하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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