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작가 나혜석 소개
3.답사 영상
4.작품 ‘경희’ 소개
5.작품 재해석 영상
나혜석의 세속적인 삶은 파멸일망정
자기시대를 정직하게 살다간 예술가로서
나혜석을 패배자로 쉽게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여성’보다도 한 ‘인간’으로 살고자 했던 당당한 사람이었다.
10대
14세 : 1910년 6월 수원 삼일 여학교 졸업. 9월 1일 서울 진명 여학교 진학.
17세 : 1913년 3월 경성 사립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최우수 졸업.
4월 일본 도쿄 사립여자미술학교 서양화부 선과 보통과 입학하면서
화가로서의 길을 걸음.
18세 : 1914년 동경 유학생 동인지인 [학지광]에 글을 쓰기 시작.
그 즈음 작은오빠 나경석의 친구인 게이요대 학생 최승구와 연애에
빠짐. 최승구는 [학지광]의 인쇄인.
19세 : 1915년 그녀의 주도로 재동경 여학생의 모임인 '조선여자유학친목회’
조직. 그 모임의 고문은 전영택과 이광수!
이미 결혼을 해 부인이 있는 최승구와 약혼.
40대 그리고 죽음
40세 : 1935년, 조선관에서 대규모 전시회. 첫아들 폐렴으로 죽음(12살)
43세 : 1938년, [삼천리]의 '해인사의 풍광'이 그녀의 마지막 화품.
44세 : 1939년, 수덕사를 나와 전남편 김우영을 찾아갔으나
문전박대 당함. 이것이 가족 간의 마지막 만남.
49세 : 1944년, 함묵증에 빠져 있던 그녀는 인왕산 청운 양로원에
들어감.
1945년(50세) : 해방 무렵 안양에 있는 기독보육원농장에 있었으나
그 후 행방불명.
1948년(53세) : 12월 원효로 시립자제원에서 행려병자로 사망.
사망진단서에는 “신원미상, 무연고자, 영양실조,
실어증, 중풍, 추정 연령은 65∼66세”라고 기록. 사후 묘지마저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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