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칼날
3장. 우주여행
4장. 육교 위에서
5장. 궤도회전
6장. 기계도시
7장.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 11장.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전체적 분석 & 결론
70년대 산업화의 비극을 뫼비우스의 띠로 상징화 했다. 뫼비우스의 띠는 앞면과 뒷면을 구분할 수 없는 모양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앞면이 뒷면이 될 수도 있으며 어느 한 부분을 정확히 앞면이나 뒷면이라고 말할 수 없다. 소설에 등장하는 꼽추와 앉은뱅이는 산업화로 인해 피해를 받는 도시 빈민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집이 강제로 철거당하지만 아무런 수도 못 쓰고 그대로 당하기만 한다. 그리고 이들을 괴롭히는 ‘사나이’로 상징되는 특권세력들이 존재한다. ‘사나이’는 강제로 철거된 집이 있었던 땅들을 싸게 사들이고 비싸게 팔면서 이익을 챙긴다. 꼽추와 앉은뱅이도 적은 돈이지만 어쩔 수 없이 ‘사나이’에게 땅을 판다. 여기서만 보면, ‘착하고 약하고 당하기만 하는 사람’과 ‘악하고 강하고 약한 자를 괴롭히는 사람’이 정확히 구분되어 보인다. 전자가 꼽추와 앉은뱅이, 후자가 사나이로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꼽추와 앉은뱅이는 이 사나이에게로부터 돈을 받아내려 하는 것에서부터 그 구분은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앉은뱅이는 꼽추와 함께 사나이가 탄 차를 멈춰 서게 한 후에 사나이를 전깃줄로 묶어 꼼짝 못하게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돈을 챙긴다. 앉은뱅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사나이 앞에서 ‘약한 자’가 아닌 ‘강한 자’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돈을 가지고 휘발유로 사나이와 함께 차를 불태워 버린다. 이 상황들은 그들이 ‘착하고 약한 자 피해자’로 구분될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사나이도 끝까지 ‘악하고 강하고 가해자’로 구분될 수 없게 만든다. 즉, 구분이 모호해지는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다. 이는 꼽추와 앉은뱅이를 영원히 ‘착한 사람’으로 놔둘 수 없는 산업화의 비극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장의 첫 부분에 나온 굴뚝청소를 한 두 아이의 이야기도 이 맥락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두 아이가 자신의 얼굴이 깨끗하거나 혹은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의 차이를 얘기한 이 이야기를 결과적으로 볼 때, 깨끗함과 더러움은 모호하다. 자신이 깨끗하다고 생각하고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도 실제의 깨끗함과 더러움과 다를 수 있다. 즉, 나쁜 짓 한번 안하고 착하게 산 소위 ‘깨끗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더러운 사람’ 또한 모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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