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작가의 주요작품 (감자,배따라기,광염소나타)
2-1.광염소나타
2-2.작품에 드러난 작가의 의식
3-1.토론(주제:범죄를 독특한 예술형태의 기회로 볼 것 인가
용서할 수 없는 범죄로 보아야 하는가?
출생지 : 평남 평양
학력 : 일본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학부 - 가와바타미술학교(川端畵學校) 중퇴
1919년 최초의 문학동인지 [창조(創造)]를 발간,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 발표
1924년 첫 창작집 [목숨] 출판, 이후 당시 유행하던
신경향파(혹은, 프로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문학 주장
1935년 야담사(野談社)를 설립 월간지 [야담(野談)] 발간
1943년 조선 문인보국회 간사
1944년 친일소설 [성암(聖岩)의 길] 발표
1951년 6·25전쟁 중에 서울에서 작고
1955년 사상계(思想界)에서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동인문학상(東仁文學賞)'을
제정·시상, 1979년부터 조선 일보사에서 시상
김동인은 1900년 10월 2일 평양에서 대지주이며 그리스도교 장로인 김대윤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호는 금동. 1912년 기독교계 숭덕소학교를 졸업하고,
숭실중학에 입학하였으나,중퇴하고 일본 유학으로 나아간다.1914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메이지 학원을 거쳐 아오야마 학원을 졸업, 귀국하였다가 다시
동경으로 가서 그림에 뜻을 두어 가와바타 미술학교에 입학한다.
1919년 가와바타 미술학교를 중퇴하고, 주요한 등과 함께 한국 최초의 문예동인지
『창조』를 간행하며 처녀작인 단편 소설 을 발표함으로써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3·1 운동 때에는 출판법 위반 혐의로 투옥, 6개월 징역 및 2년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출감한 바 있다.
1930년대 이후 (1934). 등의 역사
소설을 썼다.1936년 6월에는 ‘북지황국위문사절단’의 일원으로 만주를 비롯한 중국
일대를 방문하며, 1942년에는 ‘불경죄’란 죄목으로 서대문 형무소에 6개월간 수감
되기도 한다. 1948년경에는 정신착란증 증세를 보이며, 1950년에는 늑막염이 발발,
식사조차 제대로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불편한 생활을 하다 1951년 1월 5일 죽었다.
:배따라기는 참회와 고통으로 비애의 운명을 짊어진 채 붉은 황혼이 흐르는
이름 모를 곳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기구한 형제의 운명을 그리고 있다.
낭만적인 비극미가 흠씬 묻어 나는 배따라기는 서러운 인간의 삶은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키는 이야기다.
-배따라기 소리의 사연을 물음
-아름다운 아내와 늠름한 동생에 대한 막연한 시기심.
-장터에서 돌아온 ‘나’가 보게되는 옷가지가 흐트러진 두 사람.
-아우에게 손 지검을 한 후 오해라는 것을 깨닮음.
-아내는 자살, 아우는 고향을 떠남
-뱃사람이 되어 아우를 찾아 떠돌다 우연히 아우를 만나나 다시 헤어짐.
-다시, 노래를 부르며 아우를 찾아 돌아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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