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우리나라 결혼의 변화과정
Ⅲ. 결혼비용
Ⅳ. 최근 선호하는 배우자의 직업 및 조건
Ⅴ. 결혼 후의 장단점
Ⅵ. 실제 결혼 생활기 및 문제점
Ⅶ. 결혼에 관련된 명언
• 사전적 의미
결혼(結婚) :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음. 혼인(婚姻).
사회가 인정하는 절차에 따라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여 부부가 되는 것.
이것은 사회적으로 인정된 지속적인 남녀의 성적 결합이며, 일반적으로
특정한 규법에 바탕을 둔 동거 관계와 경제적 협력이 따르는 사회
Ⅱ. 우리나라 결혼의 변화과정
오늘날 행해지는 현대식 결혼식은 본디 우리의 결혼 문화가 아니라, 서구에서 들어온 결혼 문화이다. 어떻게 해서 우리는 우리의 전통 문화를 멀리하고 현대식 결혼을 하게 되었을까? 상고 시대의 원시 혼속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그러나 잡혼(雜婚)이나 군혼(群婚)이 있었으리라 추측되며, 고조선의 부여에서는 가계(家系)를 중요시하여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고, 동옥저에서는 민며느리의 혼습이 있었다. 삼국 시대에 들어오면, 고구려 시대에는 모계 중심 사회의 풍습으로 서옥의 혼속이 있었고, 신라 시대에는 왕족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왕족간의 혈족 혼인이 있었다. 백제에서는 부녀의 정조가 절대로 요구되는 일부일처제의 혼속이 정립된 것으로 보아, 신라나 고구려에서보다 일찍 혼속이 정립된 듯하다. 삼국통일 이후 고려 초기에서도 계급적 내혼제가 그대로 답습되고 근친혼이 성행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원나라의 세조(世祖)가 왕가의 동성혼(同姓婚)은 성지에 위배되므로 앞으로 위반하면 논죄하겠다고 경고함에 따라, 충선왕(1310년)이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종친과 양반의 동성 금혼(同姓禁婚)을 국법으로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또 고려시대에는 어린 남자를 신부집에서 양육하여 장성하면 혼인시키는 예서혼의 풍습이 있었고, 원나라의 공녀책(貢女策)으로 처녀의 숫자를 줄이기 위하여 일부다처 제도도 있었다. 그러다가 주자의 《문공가례》가 들어오면서 비로소 잡다한 혼속이 일원화되기에 이르러, 육례에 의해 혼례식이 거행되었으나, 지나치게 번잡하다 하여, 고려말부터는 《사례편람》에 의한 사례로 혼례식을 거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온 서구문명에 밀려, 딸을 낳으면 벽오동을 심어 그것으로 딸이 시집갈 때 장롱을 만들어 주었다던 부모의 정성과 사랑에서 나온 아름다운 옛 풍습은 사라져 버리고, 다만 번잡하고 의미 없는 혼례 형식만 남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시대의 변천에 발을 맞추어 전통 혼례뿐만 아니라 제례·상례 등의 의식도 간소화·현대화하자는 뜻에서, 1973년에 대통령령으로서 가정의례준칙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그 동안 가정의례준칙은 그 목적과 의의를 다하지 못했다. 일부 특권 계급의 호사스러운 결혼식은 아예 가정의례준칙을 무시하는 듯했으며, 금지 조항이었던 청첩장 등 인쇄물에 의한 하객 초청은 여전히 행해졌다. 그래서 1988년 7월 23일, 보사부는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을 전면 개정하거나 또는 폐지하고, 이 법에 규정된 처벌 조항을 삭제하는 대신, 강제성 없는 가정의례준칙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권장키로 했다. 전통 혼례식을 하든 현대식 혼례식을 하든, 혼례식은 일생의 뜻 깊고 중요한 행사인 만큼, 형식에 치우치기보다는 혼례의 의미를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출처] 결혼 에세이(박수선 지음) 충남대학교 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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