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와 한비자의 법가사상
- 순자의 생애
- 한비자의 생애
- 법가사상의 등장배경
- 법가가 추구한 이상 사회
- 한비자의 법가사상
- 법가 사상에 대한 반성
참고서적 :
순자의 이름은 황(況)이고, 자는 경이다. 순자의 삶은 50세 이후부터 기록으로 남겨졌다는 점이 특이하다. 순자는 살아 있을 당시 상당한 영광을 누린 사람이었다. 그는 전국시대 조(趙)나라에서 태어났으며 50세 무렵에 제나라로 갔다. 직하학파에서 가장 덕망 있는 학자로 인정받아 직하의 최고 사상가가 맡는 좨주 벼슬을 세 번이나 지냈다. 그러나 순자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자신을 시기하는 사람들로부터 참소를 당한 순자는 그 뒤, 조나라에 잠시 머물렀다가 나중에 초(楚)나라의 실력자 춘신군 밑에서 난릉이라는 지역을 맡아 다스리게 된다. 춘신군이 권력 다툼의 소용돌이에서 살해당하자 순자는 그대로 난릉에 정착하여 제자들을 가르치고 책을 짓는 일로 여생을 보낸다. 그때 얻은 제자가 한비자 ․ 이사 등이 있다.
- 한비자의 생애
한비자의 출생 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대략 기원전 280년경으로 본다. 의 '노장신한 열전'에 의하면, "그는 한나라의 높은 귀족 출신으로 태어났고, 형명법술의 학을 좋아하였으며, 언변은 능하지 못하였으나 저술에 뛰어났다"고 한다. '항명법술의 학'은 법가 사상을 말하는 것이다. 사기에서는 한비자가 이사와 함께 순자에게 배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비자가 순자에게 직접 배웠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곽밀약이나 가이쯔까 같은 학자들이 의문을 제기했지만, 순자의 사상이 한비자에게 수용되어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순자의 사상만이 아니라 춘추 전국 시대의 법가 전통과 도가, 묵가, 유가의 사상이 한비자의 체계에 흡수되어 있다. 이것은 전국 시대 말기 이후 각 학파 사이의 사상적 교류와 융합의 자연스런 경향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 속의 중국 철학. 중국철학회 지음. 예문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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