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인문학(인문과학)의 전통
Ⅲ. 현대 인문학(현대 인문과학)의 등장
Ⅳ. 현대 인문학(현대 인문과학)의 배경
Ⅴ. 현대 인문학(현대 인문과학)의 특성
Ⅵ. 현대 인문학(현대 인문과학)과 영역 변화
1. 새로운 세계관과 신과학 운동
2.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Ⅶ. 현대 인문학(현대 인문과학)과 교육
Ⅷ. 향후 현대 인문학(현대 인문과학)의 개선 과제
Ⅸ. 현대 인문학(현대 인문과학)의 한계
Ⅹ. 결론
참고문헌
그러나 인문학이 위기다. 세계적인 현상이다. 과학주의와 자본주의가 `획일`과 `편파`로 질주해 온 저 여름의 무성함을 거쳐 또 하나의 무늬를 그리기 위한 전조이다. 가을(결실)인가, 황혼인가? 결실도 단조로운 걸음걸이, 획일의 귀결이요, 황혼도 한 가지 색으로 채색된 편파와 무미(無味)의 빛바랜 흔적이다. `시대`로 표현되는 역사적 시간의 표상이 하나의 나이테로 마무리된다. 우리는 그 황혼의 그림자 속에 있다. 그것이 그림자임은 우리가 황혼의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무미와 무기력의 늪, 허무로 빠져든다. 삶의 터전이 무너진다. 그러나 긴장과 불연속이 위기의 생리다. 표피로 스치는 바람이 무슨 자국을 남기겠는가. 나이테가 선명할수록 그것은 긴장된 배회와 성실한 걸음걸이의 흔적이다. 흔적 없는 역사, 나이테가 없는 나무, 우리의 경험이다. 역사의 단절이요 인문학의 실종이다. 타율적으로 단절된 역사, 그 끈긴 `틈새`에 식민의 뿌리가 무성하다. 그래서 세계의 황혼이 우리에겐 암흑처럼 더 짙다. 세계자본주의가 인류의 고통이면, 한국자본주의는 `우리의` 고통이다. `우리`가 배제된 세계의 시간표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무미`다. 물론 `우리의 것`이라고 해서 소나무는 갯벌에 살 수 없고 해삼은 민물에 살 수 없다는 식이 아니다. 우리 것을 상실한 부재의 원인, 그것이 문제다.
밖으로 보나 안에서 보나 '부재를 향해 떠나는 무늬'는 당면한 인문학의 위상을 함축한다. 또 그것이 멀리 실종된 인문학의 목표를 지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언적이다. `무미` 위에 `우리의` 무늬를 그리자. 사람살이의 무늬를 그려내는 우리의 인문학이 우리의 `국적`을 갖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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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 인문학의 위기와 전망, 전국대학 인문학 연구소 협의회, 민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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