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인문학의 만남
1. 건강과 인문학의 교집합에서
‘인문학 : 정치·경제·역사·학예 등 인간과 인류문화에 관한 정신과학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인간과 인간의 문화에 관심을 갖거나 인간의 가치와 인간만이 지닌 자기 표현 능력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과학적인 연구 방법에 관심을 갖는 학문 분야로서, 인문과학이라는 개념은 라틴어의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네이버 백과사전)’
건강에 대한 논의에 앞서 일단은 인문학의 가장 포괄적인 정의로부터 출발한다. 여기서 핵심 단어는 ‘정신과학’이 될 것인데, 이는 실체가 없는 것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인문학적인 자세는 ‘어떠한 대상의 인류의 정신적인 분야와 관련된 부분을 연구하고 다룰때의 자세’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건강에 대해서 인문학적인 접근을 한다?’ 누구든지 이러한 표현을 처음 접했을때 드는 느낌은 바로 생소함이다. 왜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앞뒤가 안맞는 것 같다’라는 의견을 내보인다. 그렇다면 그 말의 이면에는 무심코 건강을 물질적인 것으로 여기는 사고가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점이 있다. 그것은 실제로 이미 우리는 건강을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인문학적 관점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
그렇다면 ‘건강’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자. 인류, 특히 동양인들은 오래전부터 건강하다는 것에 대해서 그동안 물질적인 가치를 부여해왔다. 흔히 ‘건강을 얻다’, ‘건강을 잃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건강이라는 대상을 실체적인 대상으로 비교하곤 해왔다. 전통적으로 써왔던 언어 표현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는 오랫동안 건강을 ‘신체 기관 그자체의 원활한 작동’과 동일시 해왔던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이렇게 되면 동양에서 말하는 ‘기’에 대한 언급을 뺄 수 없다. ‘기’라는 것은 사물이 가지고 있는 생명의 기운이며, 이것은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형체를 가진 실존하는 대상으로 여겨져왔고, 실제로 동양 사상(의학,철학을 모두 포괄해서)에서는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기의 일환으로 취급하면서, 몸에 기가 부족하면 몸이 아프게 되고 허약해 진다고 설명했다. 거기서 나온 말이 ‘감기’이다. 말 그대로 ‘기가 줄었다’라는 뜻이 질병의 현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근대에서 현대 사회로 넘어오게 되면서 ‘기’로는 해석할 수 없는 ‘스트레스’라는 정체불명의 대상이 부상한다. 이는 물질적인 존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몸상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며, 한 인간을 완전히 망가뜨릴수도 있는 강력한 대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다. 결국 20세기에 들어와서 건강의 기본적인 관념에 대한 대규모 수정 작업 및 인식 전환이 가해짐에 따라, WHO에서도 건강에 대한 정의을 ‘단순히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완전한 신체적, 정신적 및 사회적 안녕상태(Health is a state of complete physical, mental, and social well-being and not merely the absence of disease and infirmity)로 수정하기에 이른다.
정의가 비록 약간 모호한 면이 있긴 하지만, 이는 20세기에 와서 본격적으로 건강의 ‘정신적인’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잘 보여준다. 단지 그 원인이 ‘스트레스’라고 하는데는 비약이 없지는 않으나, 건강이란 것이 단순한 물질적 상태가 아닌, 정신과 물질이 복잡하게 연관된 대상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중요한 근거 중의 하나인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까지 이러한 접근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느낌과는 무관하게 이미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건강에 대한 인문학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건강은 인문학적 접근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대상인 것이다.
2. 건강에 대한 인문학적 자세
우리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건강에 대해서 과학적인 자세와 인문학적 자세를 동시에 견지해 왔다. 다만 정보의 양이나 가치의 비중이 높은 것은 언제나 과학적인 부분이다. 뭐가 몸에 좋다, 어떤 운동이 어디에 좋다, 어떤 음식은 피해라, 등등, 특히 과학적인 근거를 뒷받침하고서 언급되는 이야기들은 ‘건강상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실생활의 건강 유지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문제는 한 대상에 대해서 인문학적 관점과 과학적인 관점이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한 예로 ‘흡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과학적인 자세의 관점에서, 두말할 것 없이 담배는 백해무익이요, 만병의 근원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인문학적 자세로 이를 보면, 그사람이 처한 상황이나 정신적인 상태로 견주어보아, 흡연이 최고의 처방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접근할 경우에는 과학적인 방법과 달리, 모두에게 결과가 공통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과학적 인과관계 외에도 그사람이 처한 인문학적 환경에 의한 변수가 많기 때문에(과학적 인과관계의 수십배는 될 것이다), 얼마든지 다른 관점을 견지할 수가 있다.
문제는 이로 인해 두 관점이 충돌할 때 어느쪽의 손을 들어주느냐가 될 것이다. 그동안 언제나 과학은 승리를 거두어 왔다. 왜냐하면 건강에 있어서 이러한 인문학적인 관점들은 20세기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서 각종 정신적인 기작들을 과학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면서, 결국은 대부분이 과학적으로 파훼되어 의미없는 것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흡연으로 인해 얻는 정신적인 안정은 니코틴 중독에 의한 중추신경의 금단증상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고, 흡연으로 인해 얻는 안정은 신경의 착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인 의학은 20세기 후반 정점에 다다르면서 그 한계를 보이기 시작한다. 동일한 원인으로 인한 동일한 증상을 보이는데도 동일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고서 환자들마다 심한 편차를 보인다, 그 원인을 파고 들어갈수록 과학적인 부분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한 이유로 의학은 질병을 막는 것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목표인 ‘고통’을 치료하는 것으로 목표를 변경한다.
이로 인해서 그동안 가치절하 받아왔던 본격적인 인문학적인 의학이 점차 부상하기 시작한다. 이는 질병과 고통은 어떤 형태로든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서 결코 분리되어 나타날수는 없는 현상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고통’이라는 것이 단순히 과학적으로 저울질해서 가려낼 수 있는 것이 아닌, 한 인간이 앓고 있는 질병부터 시작해서 그 질병의 내재적인 측면, 그리고 그 사람이 맺고 있는 주위 사회 환경까지 고려해야만 파악이 가능한 대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그에 대한 기존의 과학적인 방법 외에 다른 접근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 접근이 바로 이 ‘인문학적인 자세를 통한 접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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