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욕망의 일반론
2.1 욕망의 구성
2.2 욕망의 원천과 파생
2.3 '보다 더'와 '더 이상은 안 돼'
① '보다 더'
② '더 이상은 안 돼'
2.4 욕망의 전개와 선택
3. 권력욕
3.1. 권력욕의 범주적 규정
3.2. 권력욕의 구성 요소
3.3. 권력욕의 원천과 파생
3.4. 권력욕의 전개
4.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보이는 권력욕의 전개
4.1 한병태의 전학
4.2 한병태의 상상
4.3 한병태의 굴복
4.4 새로운 담임선생님의 등장
5. 마치며
욕망이 갖는 기대적 측면(기대와 초조와 불만과 고통)과 성취적 측면(성취감, 쾌감, 만족감, 기쁨)은 결국 총체적으로 몸과 관련된다. 따라서 몸은 모든 욕망의 발생하는 원천이다. 몸은 존속하기 위해 그에 필요한 것을 해야 한다. 이처럼 몸의 존속에 필요한 것을 하고자 함이 욕망의 원천적 측면이다.
몸은 자신의 존속에 필요한 것이 결핍될 경우 그것을 스스로에게 강하게 알리는 장치 즉 고통, 불안, 불만 등의 장치를 가진다. 그리고 이 장치는 몸에 나쁜 것으로 느끼도록 몸에 길들여져 있다. 몸은 그 결핍을 충족하고자 또는 나쁜 것을 극복하고자 욕망의 대상을 찾아 그것을 통해 욕망을 충족한다. 반면, 몸은 욕망을 충족했을 경우 그 보상으로 쾌감, 만족감이라는 장치를 마련했다. 이것은 몸에 좋은 것으로 느끼도록 몸에 길들여져 있다
원천 욕망을 충족하지 못했을 경우 몸은 그것을 알리는 장치인 고통이나 불만족을 느낀다. 이 고통의 극복이나 불만족의 해소 그리고 욕망의 충족(소유와 실현의 양 측면)에서 쾌감, 즐거움 등이 발생한다. 이때의 쾌감은 몸의 생존욕의 충족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는데 이를 원천 쾌감이라 한다. 한편, 개별 욕망의 충족이 반복되거나 욕망 충족의 다양한 시도에 따라 원천 쾌감과는 또 다른 쾌감이 발생하는데 이 쾌감은 몸의 생존욕과 직접적으로 관계하지는 않으며 이를 파생 쾌감이라 한다.
여기서 개별 욕망은 원천 쾌감과 더불어 이 파생 쾌감을 주도적으로 충족하려는 독자적 운동성을 보임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파생 쾌감을 위한 욕망을 파생 욕망이라 한다.
우리의 몸은 이러한 개별 욕망(원천 욕망과 파생 욕망)의 전개 운동 과정에서 욕망 충족에 보다 유리한 방향으로 몸을 변화시킨다.
2.3 '보다 더'와 '더 이상은 안 돼'
욕망의 전개는 '보다 더'와 '더 이상은 안 돼'의 상호 작용으로 설명된다. 욕망의 '보다 더'는 쾌감의 지속성과 상승의 측면에서 볼 때 앞으로 나아가고자 함을 가리킨다. 반면 '더 이상은 안 돼'는 앞으로 나아가고자 함에 대한 제약이다. 따라서 이 둘은 상호 모순적이고 욕망의 운동은 '보다 더'와 '더 이상은 안 돼' 사이에 벌어지는 끊임없는 상호 모순적 전개 과정이다.
'더 이상은 안 돼'는 '보다 더'에 대한 제약적, 제동적 성격을 지닌다. 그래서 '보다 더 를 욕망이라 부른다면 '더 이상은 안 돼'는 반욕망이라 할 수 있다.
'더 이상은 안 돼'는 욕망의 '보다 더'에 한편으로는 제약적으로 작용한다. '더 이상은 안 돼'의 제약성은 인간의 생존 자체에 필요하다. 그것이 없으면 욕망의 '보다 더'는 거침없이 앞으로 내달림으로써 결국에는 삶의 파멸을 가져온다. 다른 한편으로는 '더 이상은 안 돼'는 욕망의 '보다 더'를 제약할 뿐만 아니라 '보다 더'를 고무하고 강화시키는 측면도 지닌다. '더 이상은 안 돼'가 없으면 '보다 더'는 존속이 불가능해지지는 않으나 그 운동성이 점차 약해진다. '더 이상은 안 돼'가 '보다 더'를 더 역동적이게 하기 때문이다.
욕망의 운동에서 더 큰 추동력을 갖는 것은 '보다 더'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의 삶과 문명은 현재의 상태처럼 전개되지 않았을 것이다. '보다 더'는 '더 이상은 안 돼'의 제약을 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제약의 극복에서 나오는 자기 강화를 통해 지속적인 자기 상승의 길을 걷는다. '보다 더'는 '더 이상은 안 돼'의 제약과 제동을 통해 통제 받으면서 또한 그것을 통해 스스로를 극복하고 강화해 나가는 힘을 발휘한다. 인류의 지난 역사는 전체적으로 보면 욕망의 보다 넓고 강한 전개의 역사였다.
① '보다 더'
왜 몸이 욕망을 내는가는 이미 해명하였다. 그렇다면 왜 몸의 욕망은 '보다 더'라는 운동성을 지니는가? 몸이 쾌감이라는 장치를 마련하고 또 그것을 좋게 여기도록 몸을 길들인 것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몸은 욕망의 충족 대상에서 느끼는 쾌감에도 묘한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우리의 몸은 많은 경우 동일한 양과 질의 쾌감에 더 이상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을 쾌감의 물림 현상이라 부른다. 우리의 몸은 물림 현상을 싫어하도록 스스로 길들여 놓았다. 대개 물림 현상이 싫증 현상과 같이 가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그리하여 욕망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보다 다른 쾌감을 충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왜 물림 (또는 싫증) 현상 이 생기는가? 물림(또는 싫증)현상은 몸이 동일 양과 질의 쾌감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며 그리하여 익숙해진 쾌감은 더 이상 몸을 이전처럼 즐겁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며 그리하여 몸이 쾌감의 양적 질적 동일성에 머무는 것을 거부하여 새로운 쾌감을 찾아 나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몸은 왜 쾌감의 동일성에 머무는 것을 거부하는가? 첫째로 자연의 천변만화와 그에 길들여진 인간의 몸 때문이며 둘째로 흐름과 다양성이 갖는 생존에서의 유익함과 반대로 동일성, 멈춤이 갖는 파멸성(식욕, 성욕 등) 때문이라 할 거시다.
엄밀히 말하면 쾌감의 동일 양과 질의 지속에도 '보다 더'가 들어 있다. 삶은 자기 성취적이자 동시에 자기 소멸적이기 때문에 그 때마다의 소멸 때문이라도 언제나 '보다 더'가 필요하다.
② '더 이상은 안 돼'
'더 이상은 안 돼'는 '보다 더'를 제약하고 제동을 걸지만, '보다 더'를 더 강하게 하기도 한다. 전자는 인간 욕망의 전개에 지나침이 없도록 그 때마다 통제하여 생존욕에 나름대로 기여해 왔다. 보라. 욕망을 통제하는 법, 도덕, 관습, 종교, 철학 등을 보라. 그런 것이 없었다면 욕망의 거침없는 전개 때문에 인간은 이미 큰 혼란에 휩싸였을 것이다. 반면 '더 이상은 안 돼'가 없었다면 '보다 더'는 자신의 힘을 전개해 나감에 있어 추동력을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보다 더'는 '더 이상은 안 돼'가 있었기에 자신을 넘어 가는 힘을 가질 수 있었다.
'더 이상은 안 돼'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 몸 내부로부터 나오는 '더 이상은 안 돼'
a) 몸의 장애
b) 욕망 자체의 내재적 한계
c) 물림 현상
d) 몸 내부의 다른 욕망과의 충돌
- 몸 외부로부터 나오는 '더 이상은 안 돼'
a) 타인의 같은 욕망 또는 다른 욕망들과의 충돌
b) 욕망 충족 대상의 외적 총량의 제약
c) 소유와 실현을 위한 현재의 방식과 힘의 제약
d) 욕망의 문화적 경향성.
e) 사회의 법, 도덕, 관습, 종교적 구속력
f) 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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