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에 대하여
-경제적 번영을 이루다
-임기가 끝나도 그의 영향력은 지속된다
고이즈미는 일본 자민당의 핵심 인물로 경력을 쌓아왔다. 그는 개인적인 인기를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는 독특한 인물이었는데, 그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는 매우 고립된 존재였다. 그는 일본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총력을 기울지만 매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함으로써 주변 국가들과의 마찰을 일으켰다.
고이즈미가 총재직과 총리직을 맡게 된 2001년 4월, 자민당은 창당 46년만에 여당이 된지 겨우 11년을 맞이하고 있었으며 일본 대기업 및 중앙정부 관료들과 권력의 상당부분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같은 "철의 삼각구도"는 기업들에게 고용 안정 및 퇴직을 보장하도록 압박했고 일본 경제는 번영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2차대전 이후 40년간 일본의 경제 부활 사례는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것에 속한다.
그러나 이 번영은 오래가지 못했다. 고이즈미가 총재직을 맡은 이후 일본 정계의 부패관련 스캔들이 터지기 시작했고 자민당에 대한 신뢰도는 급락했다. 정당 내 파벌들은 공공연히 후원금을 융통시켰고 이같은 부패행위의 배후에는 전임 총리들이 있었다. 결국 일본 경제는 1990년 무너지기 시작했고 은행들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일본 정부는 공공사업에 투자함으로써 난관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일본 인구 감소로 공공사업 투자금은 고스란히 국가 부채로 누적되었다. 결국 이 방식은 일본 정치 관료들과 건설업자들의 부정적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역효과만 낳았고 결국 정계 부패를 고착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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