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10년. 독일의 동양미술 연구자 율리우스 쿠르트가 유럽에 퍼져있는 그의 작품을 모아 '사라쿠' 라는 책을 펴내면서부터다. 깜짝 놀란 일본인들이 새롭게 그의 연구를 시작해 지금은 그에 관한 단행본만 해도 40종을 넘는다. 아직도 그가 누구였던가는 분명치 않지만 그는 에도 (江戶) 말기 배우들의 사실적인 얼굴을 그린 최고의 인물풍속화가 대접을 받고 있다.
우리에게도 그를 능가하는 풍속화가가 존재했다. 혜원 (蕙園) 신윤복 (申潤福) 이다.
달빛이 훤히 비치는 골목길 한 쪽에 점잖게 차려입은 젊은이와 곱게 꾸민 여인이 남이 볼 새라, 부끄러울 새라 은근 슬쩍 만나 정분을 나누는 그림을 그린 주인공이 바로 그다. 그 역시 1910년부터 알려진 화가다.
1910년 李왕가박물관이 일본인 곤도 (近藤佐五郎)에게 화첩 한 권을 사들인 속에 '아기업은 여인' 같은 그의 그림 2쪽이 들어 있어 그는 미술사 속에서 되살아나게 됐다.
그후 25년 뒤 국보 1백35호로 지정된 30쪽 짜리 '혜원전신첩 (傳神帖)' 이 간송미술관에 의해 공개되면서 그는 신기 (神技)에 가까운 솜씨로 조선시대 후기의 시정 (市井) 풍속을 그린 화가로 자릴 잡았다. 그러나 그림을 제외하곤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조선시대 문집에 흔히 나오는 글줄조차 그를 향한 것은 없다. 기록으론 대 감식가 이자 미술사가였던 오세창 (吳世昌) 이 그의 책에서 단 두 줄로 그를 묘사한 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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