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분쟁]조선과 청나라의 간도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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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토분쟁]조선과 청나라의 간도 관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서론

2.본론

-조선의 간도 관리

-청의 간도 관리

3.결론
본문내용
2.본론
-조선의 간도 관리
1869년과 1870년 함경도 지역에서 대흉작이 들어 강을 건너 간도에 정착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두만강과 압록강 상류 일대를 보면 강 남쪽은 산악지형, 강 북쪽은 평야다. 하이란강주변의 삼강평야는 조선 사람들이 경작했다. 경인교육대 강석화 교수(사회교육과)는 “조선의 지방관이 주민들을 집단 이주케 하고 통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1869년 회령부사 홍남주는 주민들이 개간청원서를 내면 이를 허용해주는 방식으로 두만강 대안지역의 이주를 지원했다. 압록강 쪽의 강제군수도 서간도 일대의 땅을 28개면으로 분할 해 통치했다. 1903년(광무 7년) 간도 관리사 이범윤이 간도지역(북간도지역)의 조선인을 보호하기위해 파견되었고 간도에 사는 조선인들은 청나라에게 세금을 내지 않았는데, 청나라는 서구 세력 때문에 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 한편 1907년 7월 20일 고종 황제가 일본에 의해 순종에게 양위하게 되고 7월 24일 제3차 한일협정 즉 정미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를 통해 일제는 대한제국의 행정 ,사법에서 군,경찰에 대한 모든 권한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18일 회령에 집결했던 헌병, 경찰이 간도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간도파출소가 설치되어 간도지역을 직접 관할하게 된다. 일본제국이 1905년 을사조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강탈한 상태에서 1909년 9월 4일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체결하므로 서, 경 부선에 대한 철도부설권 등을 일본이 가져가는 대신에, 청나라에게는 조선의 영토인 간도에 대한 주권을 넘기게 되었다.
참고문헌
임채정 외,『간도에서 대마도까지』, 동아일보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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