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사] 향리에서 신진사류로 이어지는 이들이 정치적으로 미친 영향

 1  [고려시대사] 향리에서 신진사류로 이어지는 이들이 정치적으로 미친 영향-1
 2  [고려시대사] 향리에서 신진사류로 이어지는 이들이 정치적으로 미친 영향-2
 3  [고려시대사] 향리에서 신진사류로 이어지는 이들이 정치적으로 미친 영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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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시대사] 향리에서 신진사류로 이어지는 이들이 정치적으로 미친 영향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I. 서론
II. 본론
1. 향리가 관직에 진출하여 신진사대부로 자리매김하게 된 원인
2. 신흥무인세력과 결탁한 신진사대부(향리기반)
3. 향리의 지위 격하, 향리계층의 분화
III. 결론
IV. 참고문헌
본문내용

1. 향리가 관직에 진출하여 신진사대부로 자리매김하게 된 원인
고려 중기에도 과거 응시 자격을 가지고 있었던 호장 이상의 향리 계층은 적극적으로 관직에 진출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들이 향학에서 받은 교육만으로는 사학의 우수한 교육을 받은 문벌귀족세력을 누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무신정변이 발생하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묘청의 난을 진압한 이후로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권세를 가지고 있었던 문벌귀족들은 무신들을 차별대우했다. 이에 불만이 폭발한 무신들은 1170년, 마침내 무신정변을 일으켰고, 이때에 수많은 문신들이 몰살당했다.
무신정변 이후에 정권을 잡은 무신들은 문신들과는 달리 행정실무에 대한 경험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에, 행정실무를 담당해줄 관리가 필요했다.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계층이 바로 향리계층이였다. 이 향리계층을 적재적소에 활용하기 위해 무인집권자들은 수많은 과거를 개최했다. 실제 조사에 따르면 고려왕조 500년 동안 총 252회의 과거를 개최했고, 도합 6718명의 합격자가 나왔다. 그러나, 무신집권기인 명종~고종대에 51회의 과거가 개최되었고, 1975명의 합격자가 배출되었다. 이는 전체의 3분의1에 해당하는 수치로서, 무인집권자들이 ‘능문능리(能文能吏)’를 찾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향리연구 / 박경자
무인 집권자들은 관리의 순위를 매길 때, 능문능리한 관리를 우선적으로 선발하였고, 능문은 충족하나 능리를 충족하지 못하는 관리, 능리는 충족하나 능문을 충족하지 못하는 관리, 능문과 능리 둘다 충족하지 못하는 관리 순으로 순위를 매겼다. 고려시대 향리연구 / 박경자
이렇게 향리계층이 과거에 진출하는 비중이 늘어난 이유에는 무신정변 이후 낙향하는 관인층으로 인해 지방교육이 발전했고, 이는 과거를 준비하는 향리들의 질적 향상을 가져왔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되겠다. 고려시대 향리의 신분에 대하여/ 김옥규

무인 집권자들이 과거를 통해 선발한 향리들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대충 언급하자면, 무신집권기에는 왕이 자주 교체되었다. 그러나 이자겸이 맺은 금나라와의 사대관계로 인해 왕이 교체될 때마다, 항상 금나라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무인 집권자들은 금나라에게서 정당성을 확보해야 했고, 이 대금외교의 선두에 섰던 사람들이 바로 과거를 통해 선발된 향리들이다. 고려시대 향리의 신분에 대하여/ 김옥규
이들은 대금외교 뿐만 아니라 기존의 문신들이 맡았던 각종 실무를 도맡아 했다. 또한 무신집권기에 있었던 민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현민을 동원하는 일을 맡기도 했다. 고려시대 향리연구 / 박경자

참고문헌
고려시대 향리의 신분에 대하여/ 김옥규
여말선초 원악향리에 대한 일고찰/ 박상규
고려시대 지방사회와 부곡제 / 허계순
고려시대 향리연구 / 박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