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본론
1. 난징대학살
1) 사건배경
2) 사건의 전개
3) 결과
2. 제2의 홀로코스트
1) 학살의 형태
2) 학살의 원인
3. 난징대학살에 대한 기억
1) 난징대학살에 대한 일본의 기억
2) 기록으로 본 난징대학살
3) 기억에 대한 부정, 그 원인
Ⅲ 결론
Ⅳ 참고문헌
2) 기록으로 본 난징대학살
사실에 대한 기억은 갈고 닦아져 역사로 재구성된다. 이는 역사가 사실에 대한 고유한 기술이 아니라 주관적 입장이 개입되고 그에 따라 소멸되기도 하는 과정을 겪는다는 것인데, 따라서 한 국가의 역사는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포함하고 있으며 역사에 대한 현재의 가치관을 내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역사를 소재로 하는 교육은 인간에게 역사적 사실(지식)을 전승할 뿐 아니라 역사적 가치관과 국가의 지향성을 습득케 할 수 있는 것으로 한 국가의 역사교과서는 국가의 역사 표상이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본 문에서는 논문「독일과 일본 역사교과서의 서술 비교」 「독일과 일본 역사교과서의 서술 비교-홀로코스트와 황민화 정책을 중심으로」, 백상욱, 2008
를 통해 역사교과서의 서술을 통해서 기억에 대한 태도, 즉 역사를 살펴볼 것이며, 난징대학살에 대한 일본의 책임 및 보상 등 과거 극복을 위한 노력을 살펴볼 것이다. 또한 이는 독일과의 비교를 통하여 서술할 것인데 이는 20세기의 군국주의, 침략전쟁, 패전, 홀로코스트 등 역사적 사실에서 상당한 공통점이 있지만 역사에 기술되는 양상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난징 대학살에 대한 역사교과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新日本史(신일본사)』
일본은 대군을 투입하고, 1937년 말에 수도 남경을 점령했다. 그때 일본군은 중국군과 일반 중국인을 포함해서 적어도 수만 이상을 살해하고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高校日本史(구교일본사)』
일본군은 대군을 토입하고 그 해말 수도 남징을 점령했다. 이때 일본군은 비전투원을 살해했다.(난징사건)
『新世界史(신세계사)』
그러나 중국측의 저항은 예상보다 강하여 일본군이 난징을 시작으로 상하이, 광저우 등 여러 도시를 점령했지만...
신세계사를 제외하고 모두 난징대학살을 다루고 있지만 난징 대학살의 원인과 진행과정, 희생자 수 등이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지 않다. 앞서 살펴본 학살과정에서의 잔인하고 참담
「역사는 힘 있는 자가 쓰는가 - 난징의 강간, 그 진실의 기록」 아이리스 장, 미다스북스
「남경대학살」 박옥상, 팔복원
「남경대학살」 최정한, 한멋사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을유문화사
「일본의 전후책임을 묻는다」 다카하시 데츠야, 역사비평사
독일과 일본 역사교과서의 서술 비교-홀로코스트와 황민화 정책을 중심으로, 백상욱, 2008
[아시아, 20세기의 기억⑨·중국 난징] 아직 역사가 되지 못한 학살의 기억 - 난징 대학살기념관, 12월 13일, 진용주 · 장현주 저
난징대학살 위키 백과사전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X54522
루거우차오 사건 블로그
http://blog.daum.net/zzzcsh/318539?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zzzcsh%2F318539
日역사학계, '중일전쟁은 침략전쟁' 인정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381826
김성조 "일본 교과서 왜곡…왜구적 행태"
http://sisa-issue.inews24.com/php/news_view.php?g_serial=484680&g_menu=05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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