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개관
분쟁 전개과정
2. 북아일랜드 분쟁 분석 – 종교적 측면
요한 갈퉁의 평화이론
강인철의 전쟁이론
3. 문제제기와 해결방안
아일랜드의 감자기근에도 영국정부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정치적으로 1등시민과 2등시민으로 차별하여 정치참여와 취직에 영향을 주었다.
올리버 크롬웰이 아일랜드를 점령한 후 행한 학살을 시작으로 많은 살육이 벌어졌다.
아일랜드에서도 IRA의 조직을 통해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했고 얼스터 민병대와 같이 이에 대항하는 움직임도 발생함에 따라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피의 일요일'로 인해 13명이 사망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후 양측의 테러로 29년간 약 3,200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영국 정부와 시민 측은 신교를, 아일랜드는 구교를 신봉하고 있었다.
아일랜드에 대한 여러 가지 개종 노력이 있었지만 영국에 대한 반감이 오히려 아일랜드 사람들을 가톨릭을 통해 뭉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 분쟁은 종교를 통해 정당성을 부여받고 두 집단을 더 구분 짓는 계기가 되었다.
개종에 실패했기 때문에 학살을 자행했고 통치의 용이함을 위해 영국정부가 신교도를 아일랜드로 이주시키면서 구조적인 차별을 조장하였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폭력이 있었기 때문에 아일랜드 인들은 가톨릭을 통해 단합됐고 더욱더 신교도들과 분리하려고 하였다. 직접적인 폭력이 있었기 때문에 아일랜드 인들이 성공회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공동정권의 출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유혈충돌
정치적으로는 이미 하나가 되었지만 신교와 구교로 분열되어 서로에 대한 불신과 증오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는 ‘사랑’
. 서로가 서로의 색깔을 내세우며 각축하기보다는 각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자세, 다른 종교, 다른 인종, 다른 정치적 성향의 상대방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
『아일랜드-수난 속에 피어난 문화의 향기』, 살림, 한일동
『아일랜드의 역사』, 한울, 테오 무디·프랭크 마틴, 박일우 옮김
http://blog.daum.net/originalstone/16219204
동아일보 기사- 2005년 9월 28일, 유윤종 기자
한국일보 기사- 2010년 6월 16일, 이진희 기자
YTN 기사- 2010년 2월 23일, 김종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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