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물소개
2 그 당시 시대상황(명대)
3 세계원정의 목적
4 원정한 기간/원정로/이동수단
5 7차에 걸친 세계(남해)원정
6 역사적 평가
7참고 문헌
홍무제의 넷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연왕에 봉해졌고, 베이징에 주재하면서 몽골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1398년에 홍무제가 세상을 떠나고 조카인 건문제가 황제로 즉위하자 영락제는 반란을 일으켜 1402년에 수도 난징을 점령하고 황제에 즉위하였다. 조카로부터 제위를 빼앗은 영락제는 민심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또 그 당시 중앙아시아 에서는 몽골인의 티무르 제국이 세력을 떨쳐 중국과 서역과의 육상 교통을 방해하고 있었다.
(1405년에는 티무르가 명나라를 공격 하는 전쟁을 일으켰지만 왕이 도중에서 병사하였다.)
육상 교통이 막힌 명나라는 해상 교통을 통하여 서남아시아 여러 나라와 접촉할 필요가 있기에 영락제는 정화로 하여금 남해를 원정하게 하였다.
첫째,
정난의 변 때 남경에서 탈출한 건 문제가 남해로 도망치지 않았을까 하는 이유로 그 탐색을 위해 시작한 설
둘째,
서쪽의 티무르 왕조의 성장을 두려워 한 영락제가 티무르 제국의 주변 세력과 동맹을 맺고 협공을 하기 위한 설
셋째,
명나라의 영향력에 도전하고 있던 베트남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 명나라의 위세를 떨치고, 중화와 변방이라는 전통적인 국제관계를 과거보다 훨씬 큰 규모로 이룩하려던 설.
정화의 세계원정의 목적은 정복과 착취가 아니라 명나라의 위력을 과시하고 그 형식적인 지배권을 인정받는 것이었다.
1차
1407년 소주(蘇州)에서 출발한 함대는 참파(지금의 베트남 중부)와 수마트라를 거쳐 팔렘방, 말라카, 실론(지금의 스리랑카) 등의 항로를 거쳐 1407년 초쯤 인도 캘커타(Calicut)에 도달했다. 말라카 해협에서 해적질을 일삼던 진조의(陳祖義)란 중국인을 붙잡아 일시 본국으로 귀국하였다. 이 항해로 인해 그때까지 명나라와 교류가 없었던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차례로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2차
1407년 9월로써 귀국 후 얼마 안 있어 연말에 제2차 원정을 떠나게 되었다. 항로는 예전과 같았지만 이번에는 시암(타이)과 자바 섬 등을 거쳐 캘커타에 도착했다. 귀환 중 스리랑카 섬 가레란 곳에 중국어, 타미르어(현지어), 페르시아어(당시 국제어) 등 3개 국어로 쓰여진 비석을 세웠다
*테이레시아스의 역사, 주경철, 2007
*그 외 참고서적 등..
2) 사이트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 (영어) ; 중국 역사 다큐멘터리,
시놉시스, 사진 등 수록
http://www.1421.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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