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국제사회]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본 냉전기 미일동맹의 변화
1950년대 미일동맹: 미일동맹의 형성
1960년대 미일동맹: 경제 성장기의 미일동맹
1970년대 미일동맹: 데탕트 시기의 미일동맹
1980년대 미일동맹: 미일동맹의 실질과 갈등
1960년대는 일본의 국내외적 환경에 상당한 변화가 나타난 시기였다. 우선 국제적으로 1960년대 미소 양극체제는 핵무기의 존재로 나타난 상호 확정적 파괴(MAD)에 대한 인식이 발생함으로 핵전쟁 자체의 발발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거의 모든 국가들이 경제발전이라는 목표를 향해 분투하였고, 많은 국가들이 다소간의 성장을 이룩한 시기였다.
국내적으로는 요시다 독트린의 연장선에서 이케다 하야토의 ‘국민소득배증 계획’을 중심으로 경제부흥에 보다 전념하고자 하였으며, 안보 개정 이후 ‘저자세’를 유지함으로 군사비를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미일동맹에 일본의 안보를 의존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에도 일본이 미국의 모든 정책을 무조건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베트남 전쟁 당시 일본의 소극적인 입장이나 오키나와 반환 교섭에서 사토 수상의 적극적인 태도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 나름의 입장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1960년대 역시 일본은 국제환경의 혜택을 입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외교의 우선 목표이자 최대 관심은 미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지적하고자 하는 점은, 바로 그 미국이 스스로 강대국임을 과시하면서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자세를 버리지 않았던 점이 일본의 경무장(輕武裝)ㆍ경제중심 노선과 절묘하게 (일본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맞아떨어졌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국력이 압도적이어서 일본의 군사력이나 경제력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오히려 일본이 경제성장을 지속한다면, 미국으로서는 동맹국을 살리기 위해 경제 원조를 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바람직스러운 것이었다. 즉, 일본은 강한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자국의 안보 보장 뿐 아니라, 경제 성장의 후원자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1960년대 경제대국을 향한 일본의 열망은 군사적으로 미일동맹에 의존하는 한편, 경제적으로는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유지한다는 입장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1970년대 미일동맹: 데탕트 시기의 미일동맹
1970년대는 닉슨 쇼크,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와 달러 위기, 데탕트 시기의 도래 등 실로 모든 분야에 걸쳐 변화와 전환이 일어난 시대였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일본은 어떠한 대응을 취했으며, 미일 안전보장 체제는 어떻게 지속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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