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차 세계대전에서 한국전쟁 까지
3. 개혁개방으로 미-중 관계의 시작
4. 현재의 미-중 세력다툼
5.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
소련과의 불화
미-중 의 화해에 는 미국과 중국에 경제적 이익을 위한 생각만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주된 이유중 하나는 소련과 멀어질만한 충분한 이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1959년 1월 12일에는 미국의 험프리 상원의원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흐루시초프가 인민공사에 대한 중국의 실험에 대해 그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반동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망동이라고 비웃어 모택동과 중국 지도자들을 격분케 하였다. 1960년부터 중ㆍ소대립이 표면화되면서 야기된, 소련의 갑작스런 원조중단과 기술자 철수, 1962년 쿠바미사일 사태에서의 소련의 회군 굴복 등은 소련을 불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어서 1968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사건 이후 1969년 3월 2일 우수리강을 따라 발생한 소련과의 군사충돌까지 일어나자 중국공산당 제9회 전국대표대회에서 채택된 새로운 당규약에 당의 국가적 임무로 “소련 수정주의 배신자 집단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수정주의를 타도할 것”이라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1970년대 들어 중국은 대립하고 있는 양 초강대국 중에서 중국의 안보에 중대한 위협을 가하는 세력은 소련의 패권주의라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미ㆍ중 국교정상화를 통하여 서구 제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확대하여 반패권주의의 통일전선을 구축하려고 한 것은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외교적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경직되었던 1950년대와 60년대에도 미국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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