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론 ▣
1. 체제에 대한 각 국의 입장(각 국이 얻고자 하는 이득)
1) 미국
2) 일본
3) 한국
2. 한․미․일 공조체제의 문제점
1) 주한(주일) 미군 주둔의 부당성
2) 신 냉전체제의 도래 < NMD / TMD >
3) 동북아 안정에 대한 미국의 이중성
3.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1) 전 국민적인 관심과 다양한 의견이 공조되는 사회의 필요
2) 독자적인 군사적 신뢰 구축의 필요성
3) 외교적 정책의 일환으로서의 對중국 민간교류 확대
▣ 결론 ▣
◈ 서론 ◈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동북아시아의 향후 정책에 큰 획을 그을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미국과 일본의 ‘미․일 강화조약’과 ‘미․일 안전보장조약’이 그것이다. 이 두 조약은 미․일 간의 공식적인 상호안전보장체제였다. 일본으로써는 ‘포츠담 선언’ 이후 미국과 맺는 대미 종속적 조약이라고 볼 수 있었다. ‘포츠담 선언’에 의해 완전히 무장해제 당한 일본으로써는 미국과 평등한 위치에서의 조약이 아닌 종속적 입장에서의 조약일 수밖에 없었다. 얼마 안 있어 1953년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고, 한․미․일의 삼각공조체제는 공식적․구체적인 틀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이후 미․일 간에 新안보조약이라고 할 수 있는 1960년 6월 20일에 개정된 ‘미합중국과 일본의 상호협력 및 안전보장조약’인 新조약(극동조항)이 결의되면서 한․일 양국의 안보문제는 유사(有事)시 미․일합동작전의 일환으로 파악되는 형국을 이루게 된다.
전후 한․미․일의 삼각공조체제 하에서 일본은 미국이라는 안정적인 방어체제 아래 한국전쟁의 특수(特需)와 미국의 많은 도움으로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게 되고, 1961년 당시 美대통령 J.F.케네디의 「남베트남의 공산화는 동남아시아의 공산화를 가져온다.」는 견지에서 취해진 미국의 對공산주의 봉쇄전략의 일환으로 베트남에서 ‘특수전쟁’을 전개하기 시작하여, 1960년대 후반, 오랫동안 지속되어 오던 전쟁을 끝내기 위해 미국은 마지막 총공세를 펴려고 한다. 그러던 때, 이 사건에 앞서 한․미․일 삼각공조체제에 불안감을 던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서승, 49호, 1999년 가을.
이삼성, , 린슈앙 (역사비평사, 1999)
정욱식 외, (이후, 2001)
김민웅, (삼인, 2001)
이정식, (中央公論社, 1989)
인터넷의 여러 사이트 (naver 백과사전, 야후, 라이코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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