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제 강점기 언론사 시대구분
2. 민족지 부재의 시대(1910∼1919)의 언론통제
가) 국·내외 정세와 신문통일정책
나) 총독부 기관지들(매일신보와 경성일보와 The Seoul Times)
3. 민족지 출현-굴절의 시대(1919∼1940)의 언론통제
가) 3.1운동과 그의 영향
나) 민족지와 사회주의 잡지의 등장
다) 언론통제 검열기구 경무국과 일제의 언론정책
4. 민족지의 소멸시대(1940∼1945)의 언론통제
가) 태평양전쟁과 민족지 말살 계획
5. 일제의 언론통제의 원칙과 문제점
가) 동화주의(同化主義)와 현실 통치상의 모순
나) 일제 언론정책·선전의 불합리와 모순
6. 맺음말 : 일제의 對韓 언론정책·선전 실패의 근본적 이유
총독부는 일체의 한국인 신문을 금지하였고, 일인신문까지 엄격한 통제 하에 두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총독부는 자신들의 정책들을 대중에게 선전하기 위해 기관지를 발행한다. 1910년 5월 21일 를 매수하고, 로 바꾸어 총독부의 국문판 기관지로 발행하였다. 위의 책, p.203.
초대 통감으로 우리나라에 온 이토 히로부미는 일인신문 을 매수하여 일본 공사관의 기관지인 와 합병, 1906년 9월 1일 통감부 기관지로 을 창간한다. 위의 책, p.206.
경성일보는 1910년 총독부가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총독부 기관지가 된다. 또한 배설이 발행하는 The Korea Daily News에 대항하는 The Seoul Time를 발행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1909년 6월 말 현재 조선 거주 외국인은 일인 144,800명 이상, 영국인 153명, 기타 외국인 577명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HJM's residency-general, recent progress in korea, seoul, 1909, p2.
이러한 상황에서 총독부가 영자신문을 발생한 이유는 코리아 데일리 뉴스와 코리아 리뷰와 같은 항일 언론지를 봉쇄하기 위함이었다. 더불어, 국제 여론의 지지와 일본의 침략정책을 서울 타임즈를 통해 더욱 효율적으로 홍보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3. 민족지 출현-굴절의 시대(1919∼1940)의 언론통제
가) 3·1운동과 그의 영향
일제는 전 민중적인 3.1운동에 의하여 큰 타격을 받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써 대책에 부심하였다. 3.1운동의 타격을 받고 일제의 식민지 정책은 세 가지 방향의 변동을 보였다. 첫째는 이른바 '문화정치'로의 전환을 표방하면서 회유와 가장된 유화정책을 통하여 한국의 독립운동전선을 이간하고 분열시키며, 가혹한 식민지통치를 은폐하려는 것이었다. 둘째는 경찰관의 수를 대폭 증가시키고 독립사상에 대한 사찰을 강화한 것이었다. 일제는 헌병경찰제를
· 참고문헌
· 김민환, 박용규, 김문종, (서울:나남, 2008)
· 김규환, (서울:이우, 1980)
· 정진석, (커뮤니케이션북스, 2005)
· 김민환, (서울:나남 2005)
· 정진석, (LG상남언론재단, 1998)
· http://www.pcuniversity.co.kr/an_html/dab_02/dab_02_1293_2.htm
· HJM's residency-general, recent progress in korea, seoul, 1909, p2.
· 최민지, (일월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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