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통령의 생애
1)
성장배경
2)
리더로서의 성장과정
2.
당선당시 시대상황
1)
당선당시 시대상황
2)
국민의 선택
3)
건국 초기의 시련과 과제
3.
대통령 리더십
1)
리더십이란?
2)
의사소통능력
3)
행정관리능력
4)
통치능력
5)
자기관리능력
4.
참 고 문 헌
단독정부 수립을 밀어붙이다
해방(1945)에서 독립(1948)에 이르는 미군정 3년은 좌우가 격돌하는 혼란기였다. 격돌의 표적은 국가건설이었다. 남북한 통일정부냐 남한만의 단독정부냐, 누가 최고 권력자가 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결과는 남북이 갈라서는 것이었고, 남한에는 이승만 정권이, 북한에는 김일성 정권이 들어섰다. 그렇다면 이승만은 어떻게 해방공간의 아노미정국을 뚫고 최고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는가.
이승만은 젊은 시절부터 주로 외국에서 활동했다. 그래서 국내기반이 약했다. 이것이 정치적 약점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정치의 기상변화에 민감했던 이승만은 당시 한반도에 일고 있는 미․소간 냉전기류를 간파하고 미국을 후원자로 이용했다. 따라서 그는 반공친미 노선을 철저히 고수했다. 무엇보다 좌익(인공)의 주석 추대를 거부하고,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한 것은 미국의 환심을 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워싱턴 당국을 설득하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가 한반도 신탁통치를 결정하자 1946년 1월부터 미소공동위원회가 몇차례 열렸다. 그러나 양측 대표는 입씨름만 하다가 등을 돌렸다. 서로 속셈이 다른데다 반탁운동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1946년 4월 6일 AP통신이 “미 점령군 당국이 남조선에 한하여 정부 수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기사를 발신했다.
그러자 이승만은 기다렸다는 듯이 *정읍발언(1946.6.3)을 통해 단독정부 수립을 역설하면서 민족통일 총본부를 발족(1946.6.29)하고 단정운동을 전개했다.
이승만이 단정을 추진하자 좌익은 결사반대했다. 미군정 사령관 하지(John R. Hodge)도 반대했다. 평소 이승만을 탐탁치 않게 여긴 하지는 놀랍게도 좌우 합작(연정)을 선호하고 있었다. 이에 이승만은 미국으로 날아가(1946. 12)워싱턴 당국을 직접 설득했다.
*정읍발언 : 미군정기에 이승만이 남한 각지를 순회하는 도중 1946년 6월 3일에 전북 정읍에서 '남쪽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할 것.'을 강조하는 내용의 발언을 한 것을 말한다. 이는 향후 이승만의
시대정신과 대통령 리더십, 김인수, 신원문화사
이승만과 제 1공화국, 서중석, 역사비평사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 유영익, 연세대 출판부
이승만 - 신화에 가린인물, 로버트 올리버, 건국대 출판부
대통령과 리더십, 김호진, 청림출판
대통령리더십총론 , 최진, 법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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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국가경영, 김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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