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적답사] 무령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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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화유적답사] 무령왕릉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발견계기

2. 송산리 고분군

3. 무령왕릉

4. 백제와 무령왕

5. 무령왕릉의 역사적 의의

본문내용
서설
1971년 봄. 아주 우연한 계기로 건국이래 최대의 유적 발굴이 시작되었다.
하룻밤 사이에 끝난 그 발굴은 당시 엄청난 기자와 사람들이 모여들어 모두들 제정신이 아닌 가운데서 이루어 졌다고 한다. 더욱이 한 기자의 실수에 의해 유물중 하나인 청동숟가락이 부러지면서 유적을 보호하려는 발굴팀과 특종을 잡으려는 기자들 사이에서 싸움이 일기도 했었다고 한다. 또 이 유적을 보호 처리하기 위해 잠시 서울로 옮기려 하자 공주 시민들이 나서서 절대 못 나가게 한다고 협박을 하기도 하고 육탄 방어를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만큼 유적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일화라 하겠다.
이 유적이 바로 무령왕릉이다.

1. 발견계기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송산의 남쪽 경사면에는 백제 고분들이 모여 있다. 이 고분들은 백제 왕족의 무덤들로 알려지면서 일제시대에 대부분 도굴의 수난을 겪은 적이 있는 것들이다.
1971년 봄, 5호 돌방무덤[石室墳]과 6호 벽돌무덤[塼築墳]의 보수 작업을 위한 대책이 수립되어야 했다. 물이 스며드는 걸 막기 위한 배수로 공사가 시작된 것은 그해 여름 장마를 앞둔 6월 29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