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계시
(1) 구원사 가운데 계시된 하나님과의 교제
(2) 심판 가운데 하나님과의 교제
(3) 미래의 하나님의 구원 행위
(4) 계시의 자리
하나님께서 자신을 말씀으로만 계시하신 것이 아니며, 특히 역사와 자연 속에서 다른 많은 방법으로도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말씀에 의한 계시를 강조하는 것에 대한 또 다른 반대의견은 이성적으로 이해할 때 계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생긴 교제라는 것이다. 구약성서의 선포가 교의 적인 선포나 교의 적인 것을 닮은 듯하기만 해도 그것은 거부되어야만 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최근 이 견해에 반대하는 강력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말미암아 일부 신학자들은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그가 역사 속에서 활동하신 것으로 제한하고 있다. 많은 반응들을 볼 때 이 견해에 진실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이 일방적이기 때문에 또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구약성서 속의 하나님의 계시 가운데 살아있고, 역동적이며 역사적인 요소들이 아주 적절하게 강조되고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계시를 역사 속에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만일 우리가 구약성서의 계시에 대하여 공정하게 판단을 한다면 우리는 구약성서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든 형식의 계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만 할 것이며 이 모든 것을 모든 형태의 계시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제라는 것과 '내가 하나님이 되겠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계시의 근본 목적에 관련시켜 볼 때만 가능할 것이다. 구약성서 전체를 통틀어 볼 때 이것은 계시의 근본 요소이며 계시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계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초점을 두고 있으나, 히브리적인 의미로는 성서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있도록 하며 이 교제를 현실화시키는 지식이다. 그러나 이 교제는 하나님의 거룩함,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거리를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이 교제를 표현하면서 신실한 자는 도리어 하나님이 신성하시며 인간과 세계와 구별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신실한 자가 하나님과 그를 사이의 거리를 더욱 인식하게 된다는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의 실제에 대한 표시라고 할 수 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개인적인 관계를 체험했으나 그는 야훼께서 단지 '손에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계신 하나님' 이 아니라 '지극히 먼 곳에 계시기도 한 하나님' 이라는 사실을 그의 동시대 사람들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계약의 신이면서도 그의 백성을 향하여 그의 거룩함 가운데 여전히 생각을 알고 하나님의 생각 속으로 들어올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을 계시하시지 않았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실 때 그는 인간으로 하여금 심판뿐만 아니라 그의 구원 행위 가운데서도 인간이 자기의 영광을 알게 하시고 자기에게 경배를 돌리게 하셨다. 하나님의 예외적인 영원한 선함은 그의 존엄하심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시편 130:4 '그러나 용서하심이 주께 있으니 주를 경외하게 하심입니다'라는 구절을 읽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주를 경외하는 감정, 이르야트 야훼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를 경외하는 감정은 우리가 종교라고 부르는 것의 분명한 표현 양식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역설적인 두 가지 관계성은 항상 그리고 모든 분야에서 그의 성령을 인간 또는 인간 가운데 주셨다는 관점을 고수하지만, 이것 때문에 인간이 신격화되지는 않는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인칭화법을 통하여 예언하지만 예언자는 조금도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시하고 있지 않다. 반대로 예언자는 메시지를 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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