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신학] 판넨브르그
1. W.Pannenberg의 계시관
2. 하나님의 자시 계시
3. 직접적 계시와 간접적 계시
4. 역사와 계시
5. 예수 그리스도와 계시
6. 인간의 하나님 인식
나가면서
기독교의 생명은 무엇보다 하나님에 대한 ‘앎’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기독교의 신앙에 대상인 하나님의 본성과 그의 생각과 행동과 목적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면 기독교는 존속할 수 없다. 김균진, “기독교 조직신학”, Vol. 1.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1986), p. 113.
인류가 끊임없이 하나님을 신앙하고 그러한 하나님의 본성에 좀더 자세히, 그리고 정확히 알려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기독교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독교가 계속 존속하는 한 이러한 고민과 우리의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고, 우리의 ‘신학함’도 하나님에 대한 질문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구약의 많은 논쟁과 무수한 신학의 대두도 바로 이런 ‘하나님에 대한 앎’의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주적인 학문으로서의 신학은 하나님에 대해서 말한다. 따라서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계시의 문제와 연관이 되어 있고 이것이 신학의 중심 논제가 되어왔다. 김이태, “판덴베르그의 기독론의 방법론적 구조비판”, (서울: 장로회 신학대학 출판부, 1985), p. 95에서 재인용.
판넨베르그(Wolfhart Pannenberg)는 하나님이 자기계시의 영역을 ‘역사’로 까지 넓혀 놓았다고 전제하고,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고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알려고 노력한 신학자이다. 하나님에 대한 ‘계시’를 살피는 것은 이러한 인간의 노력들과 그로 인한 신학의 발전된 모습들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1. W.Pannenberg의 계시관
◆ 신학적 배경
1960년대 이후 바르트와 볼트만을 이어서 신학에 새로운 독창성을 개척하고 있는 판넨베르그는 개혁주의적 보수주의와 근대적 자유이념의 독창성으로 말미암아 독일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특별히 평가되고 있으며, 그의 역사 신학의 보편성의 요구는 로마 카톨릭의 신학자들에게도 놀랄 만한 평가를 받고 있다.
1950년 판넨베르그는 바젤로 가서 칼 바르트에게서 많은 감화를 받았다. 그러나 거기서 그가 실망한 것은 바르트의 계시관이 너무 폐쇄적이어서 권위주의적인 개념에만 머물러 보편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과 볼트만의 신학이 주관주의적인 면에 치우쳤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신학을 ‘역사적 지성의 합리성’ 위에서 ‘보편성’을 지니는 학문으로 성립시키고자 하였다. 김영한, “바르트에서 몰트만까지”, (서울: 대한기독교 출판사, 1990), p. 25.
1951년 그는 하이델비르그에서 계속 신학 수업을 받았다. 당시 이 대학에서는 정통적인 루터주의 신학자인 Peter Brunner와 E.Schlink, 교회사가 H.V.Compenhausen, 구약학계의 거성 G.V.Rad, 신학학자 G.Bornkamm이 있었다. 그곳에서 머물면서 일단의 신학 서클을 구성하였는데 이것이 후에 “판넨
2. 김이태, “판덴베르그의 기독론의 방법론적 구조비판”, 서울: 장로회 신학대학 출판부, 1985.
3. 김영한, “바르트에서 몰트만까지”, 서울: 대한기독교 출판사, 1990.
4. 박봉랑, “판넨베르그의 역사 신학의 출발”, 신학연구, 13집. 한국신학대학 신학회, 1972, 봄
5. 조군호, “판넨베르그의 계시 이해”, 카톨릭 대학 대학원 논문, 1980.
6. 오대식, “판넨베르그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기 계시와 역사 이해”, 서울: 장로회 신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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