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고중세사] 페르시아전쟁에서 아테네제국까지
불평등한 사람들끼리의 갈등
교전사태의 발발
전면적인 침공
아테네 제국의 확립
아테네 사법제도의 민주적 개혁
페리클레스의 리더쉽
번영하는 아테네
신체묘사의 새로운 스타일
아테네 사람들은 클레이스테네스의 민주적 개혁에 반대하는 과두제 저지자들이 스파르타의 개혁을 불러 올 것을 두려워하여, 기원전 507년에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1세에게 사절을 보내 보호 동맹을 요청했다. 아테네 사절들은 페르시아 사령부가 있는 사르디스에 파견되 스파르타로부터 아테네를 보호해 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페르시아의 관점에서 볼 때 아테네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너무나 미미한 존재였던 것이다.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은 대략 두 가지로 설명해 볼 수 있다.
첫째, 그리스 본토의 두 주요 세력이었던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서로를 의심하는 상태였다. 스파르타는 기원전 508-7년에 클레이스테네스와 권력다툼을 벌이던 이사고라스를 돕기 위해 클레오메네스 왕과 군사를 아테네에 보내 군사적으로 개입했다. 스파르타군은 아테네에 의해 굴욕적으로 패배당하고 아테네 또한 시민 7백 가구가 일시적으로 유랑을 떠나야 하는 피해를 겪었다.
둘째, 페르시아 왕국은 서쪽으로 계속 뻗어나가 아나톨리아를 점령하면서 그 연안의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복속시켰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