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훈민정음 창제의 이유
3. 훈민정음의 보급
3.1 교육 기관을 통한 보급
3.2 소설을 통한 보급
3.3 불교를 통한 보급
3.4 연산군의 한글탄압 사건
4. 결론
3.1 교육기관을 통한 보급
1446년(세종 28) 『훈민정음』 해례본이 반포되고 비로소 백성들에게 한글이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학교에서, 혹은 유치원에서 한글을 배우듯 백성들에게 새로운 문자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교육기관을 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초등교육은 서당에서 이루어졌다. 서당은 민간교육기관이어서 입학자격이나 정원이 유동적이지만 나라에서는 서당을 주시하고 있었다. 국가의 통치 이념과 중앙집권적 체제를 서당을 통해 시골 구석구석까지 확대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경봉, 시정곤, 박영준, 『한글에 대해 알아야할 모든 것』, 김영사, 2002, p. 99
. 따라서 세종과 중앙 정부에서 한글을 보급하고자 할 때 서당은 최적의 수단이었음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당시 서당에서 사용한 교재들은 《천자문》, 《동몽선습》등 모두 한자와 한문을 익히기 위한 책이었다. 서당에서는 《천자문》에 한글로 음과 훈을 달거나, 한글로 번역된 《소학》, 《동몽선습》 등으로 공부했다. 《천자문》을 비롯한 기존의 한자 교과서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한자를 교육하기 전에 한글 교육이 먼저 이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한자의 교육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의 한글 사용은 최세진의 『훈몽자회』에 이르러 새로운 문자인 한글의 보급에 하나의 기원을 이뤘다. 『훈몽자회』는 한자음의 교육과 그 뜻을 가르치기 위한 아동용 교과서로 조선시대에 가장 널리 보급된 한자 교과서의 하나이다. 특히 권두에 실린 凡例와 諺文字母는 최세진의 신문자 연구의 精髓로서 그의 언문에 대한 견해를 살필 수 있다. 범례에 내용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정 광, 『훈민정음의 사람들』, 제이앤씨, 2006, p.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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