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여인상 비교
2. 고려시대 여인들의 의복
3. 고려시대 여인들의 머리
4. 고려시대 여인들의 화장
5. 고려시대 여인들의 장신구
- 궁중문화의 발달과 송원대 사녀화의 영향
조선후기 : 기녀들의 관능적인 염요(艶妖)한 미인상
- 교태스러운 염요미는 여항화가 신윤복에 의해 전형화됨. 특히 신윤복의 기녀풍속도들은 이러한 조선 후기 여인의 염요미를 가장 잘 보여줌. 유흥문화를 주도하고 향락을 즐기는 부유한 중서층의 영향에 의해 형성.
『고려도경』
출가 전 홍색 비단으로 머리를 묶고 , 나머지 머리는 뒤에 내렸다.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전형적인 미혼녀의 발양
-서민층 미혼녀들의 두식모양이 목 뒤에서 머리를 묶는 모습
『고려사』
결혼하지 않은 미혼여자의 두발 크게 두 가지 피발하지 않고 홍라로 두발을 묶어 그대로 내리는 형태, 어린 여자아이의 두발장식 양쪽으로 뿔 모양처럼 잡아땐 두발양식
연지화장
고려 말기에는 연지찍는 것이 유행함.
떠나는 임에게 이별주를 따라주는 기녀의 모습이
‘감사다’에서 저호흥분적금배라 하였는데 ‘흥분’이란 연지가 붉기 때문에 이렇게 불림.
또한 혼례 때 연지를 찍는 것이 몽고의 영향이었을 것이라 추정하지만 고구려 벽화를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기에 몽고의 영향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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