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명사와 최치원은 라이벌?
-향가의 최고수 월명사
-한시의 뛰어난 작가 최치원
⋇월명사와 최치원의 작품 세계관
-월명사
-최치원
∗라이벌 요소
1. 생애시기와 활동시기가 같지 않으나 업적이 흡사하다.
2. 국가적 위기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대처했다.
3. 세상과 불화한 천재의 은둔하거나 배회하는 안타까운 삶
∗두 인물과 같이 시대를 잘 못 타고나 세상과 불화한 인물들
-시대를 빠르게 태어난 인물
-시대에 뒤떨어지는 인물
∗참고문헌
신라 경덕왕(742-764)대에 향가 도솔가를 지은 월명사는 당대 향가의 최고수이다.
월명사가 활동하던 경덕왕 대는 신라의 최전성기였지만, 사실은 신라의 최전성기라 불리던 경덕왕 대가 내리막의 출발점이라 볼 수 있다. 그 이유로 경덕왕이 강력한 중앙집권적 기반을 확고하게 다지고자 했는데 오히려 중앙으로는 왕당파와 반왕당파의 대립과 지방으로는 귀족과 호족의 대립 등 반발과 도전을 샀다. 이 내리막의 출발점 시기 중 경덕왕 14년에 사건이 백성들은 굶주렸고, 웅천주의 향덕이 부모를 봉양할 도리가 없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아버지에게 드린 끔찍한 사건도 일어났다. 그런데도 경덕왕은 재물을 후하게 내려 포상하고 마을 어귀에 정문을 세워 표창했다. 그리고 에 하늘에 해가 두개가 나타난 천재지변이 있는데, 정치적 갈등을 두 개의 해로 암시한 ‘상징적 표현’이다. 이것은 심각한 국가적 위기의 표현이다. 경덕왕은 부처의 영험함을 빌리기 위해 문제해결의 주역으로 월명사를 이용했다.
월명사는 도솔가로 큰 보상과 명망을 얻었지만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했다. 월명사의 직접적인 자료는 없고 그가 머물렀다는 사천왕사의 내력을 통해 그의 삶
「고전문학사의 라이벌」 조현설 고미숙 저자, 한겨레 출판사
「박물지」 장화 저자, 홍익 출판사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