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소련의 음악정책
-사회주의 리얼리즘
Ⅱ. 소련의 오케스트라
1. 레닌그라드 필하모니 교향악단
2. 모스크바 방송 오케스트라
3. 소련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4. 모스크바 국립 필하모니 교향악단
5. 주요 인물들
Ⅲ. 소련의 발레
1. 발레어원
2. 소련의 발레 역사
1) 20C 이전의 소련의 발레
2) 20C 이후의 소련의 발레
3. 소련 발레단
4. 20세기 소련의 대표적 발레 작품들
5. 소련의 무용수
6. 소련의 20c 발레의 역사적 의의
*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1873-1943)
1898년 런던 필하모니 협회의 초빙을 받아 영국에 건너갔고,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로서 자작 연주하여 성공하였다. 이후로 '피아노협주곡 제2번(c단조)', '첼로 소나타' (1901), '13의 프렐류드'(1903~4)등의 걸작을 낳게 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1907년부터 09년까지는 작곡에 몰두하기 시작, '교향곡 제2번 e단조' 과 '피아노 소타타 제1번 d단조', 교향시 '죽음의 섬'을 썼다. '제2교향곡'은 1908년 페테르부르크에서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고, 같은 해 초연된 스크랴빈의 교향곡 제4번 '법열의 시'를 능가하여 글린카 상 제1위에 입선된 걸작이다. 1909년 미국을 순회 연주하고, 보스턴교향악단을 지휘한 이외에도 '피아노협주곡 제3번 d단조' 을 작곡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에게 크나큰 시련이 들이닥쳤다. 러시아혁명은 그의 생활을 송두리째 뒤엎어 버렸다. 귀족출신인 그는 공산정권을 떠나 1917년 말에 파리로 망명하였다.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 정주하며, 해마나 여름에는 스위스에서 휴양을, 가을에는 유럽의 곳곳을 순회 연주하는 식의 생활을 되풀이했다.
26년부터는 오랜만에 '피아노협주곡 제4번 g단조'을 작곡했고, 그 뒤 34년에는 '파가니니의 주제에 의한 랩소디', 36년에는 '교향곡 제3번 a단조', 40년에는 '교향적 무곡'을 작곡했으나, 그 가운데서 '파가니니의 주제에 의한 랩소디'만이 일반에게 알려져 있다. 이 무렵 그는 고국 러시아로 북귀하려는 뜻을 비치기도 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그 뜻은 실현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19세기 러시아음악의 이른바 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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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용, 2004, 「세상의 모든 클래식」, 마고북스
볼프강 슈라이버, 2009, 「지휘의 거장들」, 을유문화사
김형주, 1997,「문화로 본 러시아」, 도서출판 두리
채혜연, 2009, "1930년대 소련음악", 한국노어노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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