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창제 당시의 시대적 상황
①세종 시대와 조선 왕권, 집현전
②표음 문자의 필요성
③음운론적 관점에서의 당시 훈민정음 창제 정황
1-2. 창제의 배경과 주체, 목적
1-2-1. 배경
1-2-2. 주체
①친제설
②어제설(비친제설)
1-2-3. 목적
2. 언문 제정을 반대하는 학자들과 그에 대한 세종의 답변
3. 정치적 쟁점
4. 마치며
5. 참고 문헌
문자는 필요에 따라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것인데, 음운론적 연구의 결과로 이룩되는 것이다. 그 당시 한자가 여전히 중세동아의 국제적 문자였으나 당시 문자의 발전은 표음화 경향이었다. (고려와의 관계로 보아 매우 밀접하였던 외국문자는 원의 파스파문자였다. 먼저 원태조 성길사간이 타타통가에게 몽고어의 회수차자표기를 교육케 하여 회수식 몽고자가 성립되었으나, 그 세조 쿠비아리칸이 1269년에 제사인 서장증 팔사파에게 명하여 원제국의 국제적인 문자를 제정하게 한 것이 파스파 문자다. 이것이 바로 서장문자를 개량한 정방형의 음절식 문자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창조된 표음문자이며 이두의 약자이거나 주변의 문자제정처럼 기성의 문자를 모방한 것이 아니었다. 김민수, 『신국어사』 일조각, 1996
1-2. 창제의 주체와 목적, 배경
1-2-1. 배경
세종이 훈민정음을 어떤 배경에서 창제했는가에 대해서는 훈민정음 어제문에서 그 단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훈민정음(해례본) 어제문에서는 "우리나라 말소리가 중국과 달라서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로 쓰기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하였다. 여기서 나타나는 표면적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말소리가 중국과 달라 한자와 통하지 않는다는 점과 그래서 백성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말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훈민정음은 표면적으로는 이 두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창제되었다.
첫째로 우리나라 말소리가 중국과 달라서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는다는 점은 오랫동안 세종의 숙원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세종은 자신 스스로 뛰어난 언어학자였고 그렇기에 발음과 글자의 연관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중국말을 나타내는 한자로는 우리의 말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훈민정음이 외국어(한자
권재선,『한글 연구』 , 우골탑, 1992.
김민수,『신국어사』 일조각,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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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록,「훈민정음 창제와 반대 상소」
KBS 역사스페셜 42
한국역대인물 종합시스템, http://people.aks.ac.kr
훈민정음 친제설과 협찬설, http://xellosslove1.blog.me/140119930386
[세종대왕]훈민정음, http://blog.daum.net/abba_/15928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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