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랑스 의복문화의 변천사
1-1)패션의 중심지 프랑스의 탄생
1-2)프랑스 근대 복식 발달과정
2. 현대 프랑스 의복문화
2-1)오트쿠튀르
2-2)프레타포르테
2-3)오트쿠튀르와 프레타포르테의 만남
3. 프랑스의 대표 디자이너
3-1)샤넬
3-2)크리스찬 디올
프랑스 파리는 패션의 중심지로, 여러 차례 행해지는 세계적인 패션쇼로 유행을 앞서가고 있다. 몽테큐 거리나 생 오노레 거리 등에 샤넬, 이브 생 로랑, 크리스찬 디올, 에르메스, 루이비통 등과 같은 세계적인 고급 부티크가 즐비한다. 하지만 모든 프랑스 사람들이 최신 유행을 따르고 고급 디자이너 옷을 입는 것은 아니다. 대학가나 거리를 지나치는 젊은이들에게서는 그런 화려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다른 사람과 유행에 따라 자신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에 따라 개성을 멋지게 연출해낸다. 이런 점이 프랑스를 더욱 세계 패션의 중심지로 만드는 것이다.
2-1)오트쿠튀르
오트쿠튀르는 본래 ‘고급 재봉’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여성복 제작을 말한다. 1년에 두 번 디자이너가 계절에 앞서 고객을 위한 새로운 창작 의상을 발표하면, 이것이 전세계 유행의 방향을 결정하였다.
오트쿠튀르 컬렉션은 초대권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입장이 허용되는 발표회이다. 1월과 7월에 열리는 이 컬렉션에 참가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1000여명 정도의 사람들이 파리에 모여든다고 한다. 오트쿠튀르에 가입된 디자이너들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브 생 로랑, 샤넬, 피에르 가르뎅, 크리스찬 디올, 지방시, 니나 리치, 웅가로, 파코 라반 등이 있다.
2-2)프레타포르테
현대 패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프레타포르테는 불어로 ‘입을 준비가 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각종 기성복’으로 번역된다. 파리에서 1월과 7월에 발표회를 갖는다. 우리가 접하는 현대 패션의 대부분이 이 프레타포르테, 즉 ‘기성복’이라 할 수 있다.
신흥 부르주아들의 요청과 발달된 기계생산, 시장의 확대 그리고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 등의 이유로 더 이상 오트쿠튀르만으로는 메종의 운영이 어려워지자 1910년경부터 제조업자들 내부에 분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1930년경부터는 오트쿠튀르가 아닌 브랜드가 조금씩 관심을 끌기 시작하여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자리를 굳혔다. 1960년대부터는 오트쿠튀르를 넘어서는 힘과 창작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2-3)오트쿠튀르와 프레타포르테의 만남
1950년대 후반부터는 기존에 오트쿠튀르를 고집하던 디자이너들도 프레타포르테에 참여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크리스찬 디올이나 이브 생 로랑 등은 미국에 프레타포르테 지사를 세우고 웅가로의 경우에는 오트쿠튀르와 프레타포르테를 합쳐서 발표회를 가졌다. 또한 1972년 이브 생 로랑, 피에르 가르뎅, 니나 리치는 오트쿠튀르도 연 4회 열던 컬렉션을 프레타포르테처럼 연 2회 발표하기로 결정한다.
아직도 프랑스인들 중에는 오트쿠튀르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 엄청난 적자를 보는 형편에도 불구하고 오트쿠튀르를 계속 유지해가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패션의 종주국인 프랑스 자존심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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