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70년대 청년문화의 시작과 발전
1. 1970년대 통기타 세대
(1) 통기타 시대의 출발, 쎄시봉
(2) 한대수와 김민기
(3) 쎄시봉 가수들의 성공
2. 새로운 사운드, 고고의 시대
(1) 대학가요제
(2) 산울림
(3) 펑키 디스코 열풍
1) 통기타 음악 혁명의 아이콘 한대수
소위 ‘포크의 시대’라고 불리는 1970년대의 첫 장은 항상 한대수로부터 시작
화제를 불러 모은 1969년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가진 리사이틀(콘서트)은 한대수를 ‘자의식을 노래하는 새로운 음악인’이라고 알리는 계기가 됨
한대수는 1960년대 미국의 히피즘(월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중반 이후 미국에서 확산되던 반전, 평화, 자유를 부르짖던 청년운동)과 음악적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10대를 보냄
1968년 귀국한 그는 미국에서처럼 한국에도 저항문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
그러나 당시 한국의 문화제도는 보수적이고 문화인식은 편협하여, 그는 노래 부를 곳이 없었고 그의 모습은 손가락질 당했으며 그의 음악은 압수당했음
한 대수는 자기 음악을 조국에 들려주는 것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돌아감
2) 김민기
김민기는 서울대 미대 1학년 때에 개인전을 열 정도로 촉망받는 미술학도 였음
통기타 가수로 활동하던 그는 종로 YMCA의 ‘청개구리’에서 만난 양희은의 노래를 만들어 주면서 본격적으로 작곡을 하기 시작
1971년에는 자신이 노래한 앨범 ‘김민기’를 내면서 주목받지만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 노래를 지도했다는 이유로 음반이 압수되면서 경찰서와의 인연이 시작
김민기는 1971년 폰트라(1970년대 초 시인 김지하를 중심으로 한국문화에 대해 토론하던 모임) 모임에서 시인 김지하를 만난 후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게 되어 야학을 열고 문화운동의 길로 들어섬
(3) 쎄시봉 가수들의 성공
1) 쎄시봉 출신의 통기타 가수들
1960년대 초부터 미국에는 포크 뮤직의 바람이 불었고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침
미국에서 귀국한 한 대수가 국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젊은이들 사이에는 청바지, 장발, 생맥주, 통기타 등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문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
음악적으로도 포크의 영향이 반영되어 김민기, 한 대수, 양병집, 서유석 등 포크의 핵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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