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사] 신간회의 역사와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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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근대사] 신간회의 역사와 의의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신간회
1.자치론

2. 자치운동

3. 신간회의 결성과 활동

4.신간회의 의의

5.자매단체

6.참고문헌


본문내용
1.자치론
일제의 통치를 인정한 상태에서 자치의회의 구성, 내정독립을 위한 운동을 하여 조선의 자치를 획득하자는 논리.
즉각적인 독립이 불가능하므로 민족운동의 방향을 현실가능한 정치운동으로 전환하자는 것으로 물산장려운동 등의 경제적 실력양성론과 맥을 같이하며 정치적 실력양성론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현재로서는 독립이 불가능하므로 독립의 기회에 대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준비론과 독립에 도달하는 한 단계로서 자치권을 획득하자는 단계적 운동론의 2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준비론을 주장한 것은 〈동아일보〉 계열로 이들은 독립을 목표로 한 비타협적 운동보다는 세계 대세의 변화를 기다리면서 준비행동으로 정치운동이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자치운동이 경제적 실력양성운동을 뒷받침해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한편 안창호 등은 독립에 도달하는 한 단계로 철저한 자치권의 획득이 필요하다는 단계적 운동론을 내세웠다.
민족주의 계열에 의한 자치론은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설립운동 등 실력양성운동이 한계에 부딪친 1923년말부터 나타난다. 당시 경제적•문화적 실력양성을 통한 독립의 준비를 주장하던 실력양성론자들은 정치적 실력양성이라는 구호를 내세움으로써 본격적으로 자치론을 제기했으며, 1924년 이광수는 〈민족적 경륜〉이라는 논설에서 합법적 정치결사를 통해 일제의 통치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정치운동을 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 논설에 대한 일반대중의 반발이 심해 〈동아일보〉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타협적 민족운동에 대한 반대여론도 높아져 일단 이 시기의 자치운동은 좌절되었다. 이후 1925년 총독부에서 자치제 실시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하자 자치론자들은 다시 현재의 상태에서 독립은 절대로 불가능하므로 자치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인식하에 자치운동단체의 조직을 준비했지만 비타협민족주의계와 사회주의계의 반대, 자치제를 추진하던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의 전임 등으로 실패했다. 1929년 사이토가 총독으로 재임되었을 때 자치운동이 다시 시작되었으나 1930년 일본정부의 방침이 자치제실시 거부로 굳어지자 좌절되었다.
참고문헌
(주)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 고등학교 교과서
태건 근현대사 교과서
7급시험대비 대한국사
철학사전, 임석진 외 편저, 2009
《지배자의 국가/민중의 나라》, 돌베게, 서중석 지음. (2010년)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의 역사 3》 p240~ p245, 역사문제연구소 저.
좌절된 좌우연합의 꿈, 흩어져 맞은 독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