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명조의 환관
1. 명조 환관의 높은 권세를 보여주는 사건과 대표적 환관
2. 명조의 환관이 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
Ⅲ. 환관을 멀리 했던 청조
1. 청조, 환관에게서 권력을 되찾아 오다.
2. 명조와 청조의 정치체제 비교
3. 서태후 시기 권력을 가진 환관의 부활 ; 이연영과 안득해
Ⅴ. 근대와 환관제도의 몰락
1. 환관폐지론
2. 환관 몰락 시기
3. 현대 환관의 무리들
2. 명조의 환관이 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
명조 환관의 권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정무(政務)에 크게 참여하고 개인적으로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명조의 환관이 명조의 등장과 함께 권력을 갖췄던 것은 아니었다. 환관이 황제로부터 신임을 얻기 시작한 것은 영락제 때부터이다. 주원장 과건 문제로부터 홀대를 받았던 환관들이 영락제가 건문제를 몰아내고 황제자리에 앉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며 반(反)영락제 세력의 거점인 사대부 관료들을 억압하는 수단 혹은 맞설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후 선덕제부터는 제도적으로 환관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명조는 해당 내각이 황제에게 올리는 상주문에 조지와 포의를 첨부해서 황제에게 올리면 황제는 주서(朱書)를 정서해서 내리면 결제가 되는 비답이라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선덕제부터 글을 아는 환관이 황제를 대신하여 이를 정서하여 시스템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점차 고착화되며 제도화되었다. 더욱이 내각에서 올라오는 원안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수정안이나 의견서를 덧붙여 황제에게 별도로 결제를 요청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내각에서 아무리 좋은 의견이 올라와도 항상 측근에서 황제를 모시고 있는 환관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원안은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명에는 환관 내각이라는 것이 무언중에 생겨났고 그들의 권력은 내각을 앞질렀다. 환관 내각의 중추는 사례감이며, 그 장관을 장인 태감이라고 불렀는데 정화 또한 이 때 당시 환관들이 우두머리로써 삼보태감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당시 환관이 되는 것을 통해 가문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아버지가 아들을 거세시키거나 형이 아우를 거세시켜 환관으로 만드는 사례들이 속출했다. 명의 15대 황제 천계제가 환관 3천명을 모집한다고 하였을 때 지원자가 2만 명이 넘어 모집인수를 4천 5백명으로 늘려 뽑았다고 하는 이야기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 환관들이 정사에 참여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명조의 정치체제와 정치 제도이다. 명조 환관들이 실권을 장악하게 된 정치 제도적 계기는 다음과 같다.
1) 정치제도
ㄱ. 황제의 권력 독점 체제 구축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