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북침설과 남침설
3. 해방 이후 분단이 고착되기까지
4. 한국전쟁 당시의 사회역사적 배경
5. 한국전쟁의 발발단계
6. 한국 전쟁의 결과
1950년 6월 25일 이전부터 남한에서는 이승만 정권과 소부대및 민중간의 내전상태에 있었으며 38도선을 따라 그리고 38선을 넘나들면서 역시 북한군과 이승만의 군대간의 수천회에 걸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것이 1960년 6월에 접어들면서 38선 전역에는 보다 선명하고 구체적인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1950년 6월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개전을 최종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대통령특사 델레스를 파견하엿다. 델레스는 6월 18일 38선 일대에 나가 전쟁 준비상태를 시찰하고 6월 19일에는 국회에서 ‘개전 즉시 미국의 즉각원조’를 약속하는 연설을 하고 20일 주한미군 및 한국군 고위급과의 회의에서 개전을 선언하였다. “북벌준비가 다 되었으면 하루라도 빠를수록 좋다.”
1950년 6월에는 5월선거에서의 이승만의 참패와 38도선에서의 대규모 증강을 고려한다면 최소한 몇 곳에서 이승만의 대규모 도발적 공격이 북한측에게 강력한 반격의 포문을 열게 했다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현대 정치사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미국에서 편찬한 ‘극동군사정세’를 보면 “남한군대는 ... 보급품과 장비를 38도선 가까이에 배치하고 있었다. 38도선과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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